예쁜 우산이 갖고 싶었다. 우리 집엔 검정우산 아니면 밤색우산 아니면 어디 어디 개업집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우산이 대부분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비만 오면 먼 전생의 기억들이 떠오르는 것 같아 멍해지는, 또래보다 미적 감각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소녀였다. 지상의 연인들이 "사랑해"라고 하는 말이 하늘로 올라가 빗방울이 되어 내린다는 헛소리를 일삼아도 엄마는 아무 대꾸도 없는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거기다가 미적감각도 별로 없는 엄마가 시장에서 옷을 사다 주거나 사촌언니들이 입던 옷을 가져와서 입으라고 하면 질색팔색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엄마랑 나는 궁합이 참 안 맞았던 것 같다.
그땐 비만 오면 엄마한테 신경질을 부렸다. 특히나 장마철이 되면 식구들과 함께 쓰는 것 말고 내 전용 우산이 갖고 싶다고 노랠 불렀는데, 그럼 그까짓 것 하나 사줄 법도 한데 엄마는 아무거나 쓰라는 거다. 우산을 몇 개 갖다 버려도 이 놈의 못생긴 우산이 새끼를 치는 것인지 또 비슷한 우산들이 우산 꽂이에 꽂혀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둘째 이모댁에 잔치가 있어서 서울에 갔다 오신 엄마가 쇼핑백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그 속에 하늘색 스트라이프 원피스 한 벌과, 역시 하늘색에 흰 구름무늬가 있는 자동 우산을 사 왔다. 참 역시나 미적감각 없이 깔맞춤이라니. 어쨌거나 원피스도 예뻤고, 우산도 마음에 들었다.
어제 꽃집에서 사 온 꽃이 예뻐서 오며 가며 볼 때마다 "예쁘다 예쁘다" 한다. 그러다 춥고 덥고 비바람 부는 날 사람이나 짐승에게 해를 입고 파 먹히기도 하면서, 그래도 1년에 한 번은 꽃을 피우는 나무들을 생각한다. 그 나무들에게 "예쁘다"라고 말을 걸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시사철 밖에 서서 그늘을 만들어주고 산소를 뿜뿜 해 주는 나무의 노고는 당연한 듯 지나쳐 왔다.
베란다에 서서 비 내리는 화단의 나무를 내려다본다. 어린 시절의 '나'는 어느새 저만치 비켜나 있지만 나는 여전히 나로 남아있고, 엄마는 여전히 그 모습의 엄마로 남아있다. 결코 고칠 수 없는 엄마의 뚝뚝함을 여전히 기억하지만, 이제는 그립다. 그 그리움은 아마도 엄마가 내게서 조금, 아주 조금 떨어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비를 온몸으로 맞고 서 있는 저 나무처럼, "예쁘다"라고 한 번도 말해주지 못한 저 나무처럼...
비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그 소녀는 자랑스레 예쁜 하늘색 우산을 쓰고 학교에 갔다 돌아오는 길, 그 우산을 버스 좌석 손잡이에 걸어 놓은 것을 잊은 채 내리고 말았다. 소녀는 다시 검은색 우산과 밤색 우산과 'OO상회'라고 쓰여 있는 못생긴 우산들을 들고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