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아이들보다
일 년 먼저 유치원에 들어갔으니
여섯 살 때다.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두에 걸려 버렸다.
온몸이 가렵기 시작하더니 이내
홍반이 생겼다.
수두는 전염성이 강하다는 이유로
유치원에 가지도 못하고
개점휴업 상태로 집안에 갇혀 지냈다.
가려워도 절대 긁으면 안 된다는
엄마의 눈을 피해 가며 가려운 곳을
조금씩 긁었다.
그때의 쾌락으로 인해 지금 내 몸
몇 군데엔 아직 흉터가 남아 있다.
사랑과 가난, 기침이 세상에서 가장
참기 어려운 세 가지라고 하지만 정말로
참기 어려운 것은 가려움이 아닌가 싶다.
유치원에 가지 못하고 친구와 같이
놀지도 못하던 딸아이가 안 되었던지,
어느 날 아버지는 퇴근길에
커다란 상자를 끌어안고 들어오셨다.
내 생전(그래 봐야 여섯 살이지만)
그렇게 큰 선물을 받아본 기억은 없었다.
커다란 황토색 꾸러미를 끌러보니
30권쯤 되는 그림책들이 빼곡히 담겨있다.
이솝과 안데르센과 그림형제도
그때 처음 만났다.
요즘도 동화책을 자주 읽는다.
세상살이 골치 아플 땐 그저 영화나 책을
보는 것이 제일인데 요즘은 마음을
붙드는 영화들이 별로 없다.
내 삶도 이렇게 골치가 아픈데 남의 삶을
파헤쳐 보며 괜한 골머리를 앓고 싶지도
않다. 이럴 땐 동화책이 제격이다.
길이가 짧아 10∼20분이면 한 권정도는
뚝딱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감동마저 그리 짧을까..
웬만한 장편 소설보다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침대 발치에라도 걸터앉아
한 권 읽고 나면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삶의 한 복판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어린 시절 내가 그랬던 것처럼
동화책을 읽는다.
동화책은 生의 해답지다.
그 속에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