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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Nov 22. 2023

가족, 비탈에 서서

4-1-1=2


오후 볕이 잘 드는 집이다. 밖은 제법 계절부림을 하는데 방금 걷은 빨래에 햇빛의 온기가 살아다. 볕이 묻은 빨래를 개다가 그 온기에 잠시 손과 마음을 녹인다.


동생이 갑자기 복통을 호소해 응급실에 갔다가 담낭염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 담낭을 떼어내는 비교적 간단한 수술임에도 입원이 처음이고, 수술대에 누워 수술실로 들어가는 동생을 보고 왜 그리 속이 상한지 보호자 대기실에서 이성과 감성이 한참 실랑이를  했더랬다. 한 시간여 수술 끝에 마취에서 깬 모습이 짠했다. 잠이 들면 안 된다고 자꾸 말을 시키라는데 할 말이 별로 없어, 까무룩 눈을 감으려는 동생에게 주저리주저리 아무말 대잔치를 열었다. 


보호자가 필요 없는 시스템의 병원이라 혼자 집으로 돌아오며 새삼 가족에 대해 생각했다. 내게 가족은 동생 하나뿐이고 동생에게 가족도 나하나뿐인데,  처음으로  만약의 상황에 놓이면 이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생각이 연기처럼 스멀스멀 새어 나왔다. 이내 고개를 흔들기는 했지만.


보이지 않는 창살 속에 갇혀있는 듯 답답함을 느끼다가도 막상 그 울타리 밖에 놓여있다 보면 오히려 더한 그리움으로 부르게 되는 이름이 가족이다. 아버지, 어머니, 나, 동생 이렇게 4명이었던 우리 가족은 3명이 되었다가 2명이 되었다. 남들은 가족이 불어나기도 하던데 우리는 한 명씩 떠나가기만 했다. 물론 가족이 불어날 기회를 갖지 않은 것은 순전히 동생과 나의 자발적 선택이었다.


우리는,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나도 모르게 이 세상에 태어나 길을 걷고 있는 존재들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걷는 길은 평지가 아니라 비탈이다. 하지만 비탈길이 영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르막에선 뒤를 받쳐주고 내리막은 미끄러지지 않게 꼭 붙들어주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종종 나 혼자 달려가고 싶을 때 가족이 복병이 되어 내 발목을 붙잡는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넘어져 길바닥에 나뒹굴지 않았던 것은 그 복병들 때문이었다는 걸 이제 다. 4인용 식탁의 비어있는 두 자리와 남아있는 두 자리를 가슴이 알알해지도록 생각한다. 늦가을 볕이 따라와 가슴 언저리에서 꼼지락거린다.


동생에게서 문자가 왔다. 평소 단답형의 문자만 던 우리가 꽤 길게, 얼굴 보고 하지 못할 말들을 빨갛게 주고받는다. 평소에 말하지 않아도 속에 켜켜이 애정이 쌓여있는 존재, 밀푀유 과자 같이 가족이란 이름으로 불리기엔 연약하고 엉성해 보이지만 쉽게 부서지지 않도록 서로지탱해 주는 존재, 이런 것이 내게 가족이라 함은. 아마 다들 그럴 테지. 예쁜 에코백에 동생이 좋아하는 책과 게임기와 과일과 담양에서 사 온 댓잎차를 덜어 넣었다. 내일 아침 일찍 병원에 가봐야겠다.


언젠가는 반짝임도 잃고 초라하게 작아질 우리의 날들이지만, 각박한 현실에 가위눌릴 때 서로의 뜨듯눈빛 한 번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길 바라본다. 그리고 동생과 나, 각자가 완성한 인생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다 헤어졌으면 좋겠다.





오래전 이맘때 동생과 여행을 다녀온 후 쓴 글이다. 그때에서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외려 안도감이 든다. 동생이 퇴원하면 강 깊은 마을에 서 있던 그 자매나무를 다시 만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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