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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북세이 09화

외로움에 다가가서야 비로소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by 마루


삶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기분은 어떠할까. 인생의 짐으로부터 가벼워져야겠다는 이도, 마지막까지 가진 것을 놓지 못하는 이도 있을 게다. 박경리작가는 어느 쪽일까 궁금했다. 박경리작가의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에 해답이 있다. 이 시집에는 작가가 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써 내려간 시 39편과 그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미발표작 5편 등 총 44편의 시가 실려있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옛날의 그 집> 中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산다는 것> 中


시집의 제목을 시구에서 빌려온 <옛날의 그 집>과 <산다는 것>에서는 노년의 외로움과 인생 끝자락에서의 홀가분함과 회한을 그려낸다. 이 시집 대부분이 대작가 박경리가 아니라 생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소박한 한 인간으로서의 병듦과 후회 그리고 젊은 날 아름다웠던 것에 대해 회상한다. 지나온 드라마틱한 세월을 찬찬히 회고해 보는 박경리작가의 늙음은 어떤 것인가. 늙는다는 것은 외로움인가 아니면 가벼움인가. 박경리작가 정도면 쉽게 답을 내릴 줄 알았는데, 작가도 인생의 끝자락에 가서야 답을 찾았다. 노년의 삶은 외로움에 다가가서야 비로소 홀가분해진다고.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한국전쟁에 남편과 아들을 잃은 박경리작가에겐 지난 세월이 모질다 느꼈을 게다. 26년 동안 쓴 대하소설『토지』는 환희이자 족쇄였을 수도 있지만, 박경리작가 이후 소위 '여류'라는 차별적 단어가 없어졌을 정도로 문학적 위업은 대단하다. 그러나 한 인간으로서 떠남을 앞두고는 연약함도 보이고 미련도 있겠지만, 결국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다고 선언하는 역시나 대작가 박경리였다.


2번 완독한 <토지>와 통영의 '박경리 기념관'


눈이 온전했던 시절에는 / 짜투리 시간 / 특히 잠 안 오는 밤이면 / 돋보기를 쓰고 바느질을 했다 / (…) / 벼개에 머리 얹고 곰곰이 생각하니 / 그것 다 바느질이 아니었던가 / 개미 쳇바퀴 돌듯 / 한 땀 한 땀 기워 나간 흔적들이 / 글줄로 남은 것이 아니었을까 - <바느질> 中


오늘보다 늙어본 적 없는 우리는 늘 늙음이 두려운 존재다. '젊다'가 형용사인 반면 '늙다'는 동사이다. 늙음은 움직이는 것이고, 이 움직임은 앞으로만 간다. 사람들은 뒤돌아서 가고 싶다 생각하지만, 아니다. 뒤돌아서 갈 수 있다면 점점 더 앞으로 가기 힘들어진다. 되돌아갈 수 없으니 지나온 인생이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어머니 생전에 불효막심했던 나는 / 사별 후 삼십여 년 / 꿈속에서 어머니를 찾아 / 헤매었다 / (…) / 불효막심했던 나의 회한 / 불효막심의 형벌로서 / 이렇게 나를 놓아주지 않고 / 꿈을 꾸게 하나 보다 - <어머니> 中


박경리작가는 어머니를 이렇게 읊었다. 늙어서야, 어머니의 나이쯤 되어서야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대작가도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시로써 어머니를 불러내어 함께 거니는 그 먹먹함이 오래 남을 것 같다.


해는 수줍게 떠오를 때와 달리, 질 때는 자기의 온전한 모습을 보여 준다. 박경리작가도 노을이 되어서야 작가가 아닌 인간 박금이(본명)의 굴곡진 인생여정을 숨김없이 드러내었다.


나는 아직 노을이 질 나이는 아니지만, 박경리작가처럼 늙음을 차곡차곡 잘 쌓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래서 훗날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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