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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Jan 12. 2022

겨울 숲 산책

사금파리를 생각하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장소를 꼽으라면

아마도 겨울 숲을 들 수 있지 않을까?

그곳에서는 떠들썩함이나 왁자함 보다는

적요함이나 침잠이 어울린다.


당차게 겨울을 품고 있는 숲 속을

바스락거리며 걷는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겨울 숲은 꼭 그 속에 서지

않아도 좋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하나의 사유를 이끌어낼 수 있을 만큼

마음이 조용해진다.


시선만으로 그곳을 서성거리노라면

녹회색의 숲 속 풍경이 아니라,

내 안의 회갈색 정경을

들여다볼 수 있다.

오늘처럼 운이 따라 바람 한 점

없는 날이면 이 보다 더

완벽한 사색의 공간이 있을까?

눈으로 겨울 숲 산책을

꽤나 오랫동안 즐기고 문을 닫는다.


노트북을 켠다.


깨어진 파편들이 빛을 받아 반짝인다.

은은한 비파색의 매화피를 꿈꾸던 사발,

우윳빛의 백자가 되고 싶었던 조각,

비취색 청자를 동경하던 파편들이

한데 뒤섞여 있다.


빚어내는 한 작품 한 작품에 욕심을

갖기 시작한 후로 사금파리는 더욱더

쌓여간다.

그럴수록 도공은 자신의 작품에 더

고운 색을 덧칠해보지만

이내 깨트려버리고 만다.


스승님들이 길러 준 안목보다

자신의 재주가 따르지 못함이 애달프다.

오늘도 무수히 많은 문장의 사금파리들이

노트북 파일 속에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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