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단군신화와 엄친아 신화적 사고
단군신화와 엄친아 신화를 통한 현대사회 재고
한국에는 광복 이후부터 아주 강력한 신화가 존재한다. 그 것은 바로 '엄친아 신화'이다. 이는 엄마 친구 아들이라는 뜻으로 타인, 또는 타인의 가족을 자신 또는 자신의 자녀와 비교하는 의미로 주로 사용된다. 여기서 이 비교란 비교를 통해서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단순히 상대를 비교 대상으로 하여 대상으로 하여 분발을 유도 또는 비하를 추구하는 단어의 의미로 사용된다. 이는 우리나라의 유교주의적 사고관과 많은 연관이 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유교 사상에 따르면 '견리사의'(이익을 보았을 때 의로움을 생각한다)란 단어에도 보다시피 자신의 이익보다는 조직의 '의'를 중시하는 사상이 있다. 그런데 현대 개인주의 문화에서 이러한 사고관은 자신의 개인의 욕구를 제한하고 타인을 의식을 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것은 자본주의 문화와 결합되어 개인주의가 아닌 이기주의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욕구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데(자본주의적 문화) 타인은 자신의 눈치를 보라는(성리학적 문화) 문화로 결합되는 것이다. 이 것을 '엄친아 신화'와 결합하여 본다면 상대에 대한 인식은 '엄친아 신화', 즉 '너보다 훨씬 더 뛰어난 사람이 많으니 너는 자중하라'는 의미가 되지만 진작 자기 자신에게는 그 신화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꼰대문화가 형성된 것은 우리나라의 성리학적 문화가 식민지를 겪으면서 정착되었다. 이는 결론적으로 오로지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토대로 상호 비교를 통해 성장을 추구하는 경쟁사회를 재촉하게 되었으며, 우리나라 급속한 산업화 시대의 정신문화를 반영한다. 이는 1960-70년대 궁핍했던 사회에서 빠른 성장에는 적당한 사회 문화였으나, 현재 경제적으로 부국을 이룬 상태에서는 계속된 경쟁을 가속시키지만 정신적으로는 연대를 지양하고, 정신적으로 궁핍을 야기하는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1960-70년대 산업화 시기에 필요했던 경쟁을 상징하는 문화 엄친아 신화. 하지만 우리나라는 기존에 이러한 이기적인 문화보다 훨씬 더 오래전에 정말로 괜찮은 신화가 존재한다. 바로 단군신화이다. 단군신화는 일연이 기록한 삼국유사에 실려있는 신화 내용으로 내용은 모두 다 알 것 같아서 소략하겠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점은 바로 이 신화에 나오는 '홍익인간'이란 뜻이다. 환인이 인간세상에 내려가고 싶어하는 환웅을 인간세상에 보낸다. 환인이 삼위 태백을 내려다보니 이 지역이 가이 인간을 이롭게 할만하다 했는데, 이 때 등장한 개념이 홍익인간이다. 이 홍익인간의 이념은 우리나라 교육과정에도 기록되어 현재까지도 교육이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홍익인간이라는 교육이념에 대해서 친일파등 많은 사람들이 고대의 허구성이 짙은 언어라고 비판하며 없애려고 했지만 결국에는 잘 지켜냈으며, 지금도 이 이념을 유지하고 있다.
홍익인간 이념의 단군신화는 우리나라의 오린 정신이다. 내가 주목할 점은 이 '홍익인간'이라는 뜻이 절대 헌신적이고 이타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환웅은 자신이 인간세상에 내려가고 싶어했고, 자신의 뜻을 펼치고 싶어했어 했다는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 이 상황을 미루어보면 그는 자신이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고 그래서 자신이 내려간 이기적인 행위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 단어 자체에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내용은 이타적인 의미지만, 동시에 환웅의 상황을 미루어봤을 때, 동시에 이기적인 행위이기도 한 것이다. 이 이타적 이기성의 필요성에 대해서 나는 조금 이야기하고 싶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금 변화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사회에서 이 홍익인간이 제시하고 있는 '이타적 이기성'이 정말로 유용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더 이상 제조과정에서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으며, 가족의 형태 또한 더더욱 개별화되어 핵가족에서 1인가정의 형태가 더 늘어날 것이.
출처 연합뉴스 2010년 05월 18일 서울시 세대구성별 주요 가구비율. 그 과정에서 우리는 개인주의는 좀 더 만연하게 될 것이며, 개인의 욕구와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한 각종 도구가 걔발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간은 개인적 존재임과 동시에 사회적 존재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종족 번식의 욕구를 갖고 있기때문에 사회를 벗어나서 살아가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집단, 조직을 이루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갈등이 생길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법, 규칙'을 만들게 되었으며 이 법, 규칙에 따라서 인간은 생활하게 된다. 그리고 이 법과 규칙이 제어할 수 없는 영역을 도덕성이 차지하게 되는데, 사회가 핵가족화, 1인가정화, 개인주의화 될 수 록 도덕성의 영역이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다. 왜냐하면 옛날 대가족의 시기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등 가족 내 사람들에게 도덕성을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것에 반해서 요즘에는 맞벌이등으로 인해서 가족과 함께 식사하기 힘들어지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타인과의 연대가 가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다반사인 만큼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 것은 쉽지만 그 욕구의 표현이 타인에게 어떤 반응이 오는지, 타인이 어떤 감정을 갖는지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기에는 가상공간은 현실에 비해서 어려운 공간이다. 즉각적인 반응을 눈으로 확인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유튜브, 1인크리에이터들의 등장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생산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지만, 동시에 많은 구독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자극적인 언어, 영상을 제공하다보니, 도덕성의 영역(정의와 부정의의 경계)이 모호해졌고 이 것을 비판없이 받아들임으로써 도덕성은 점점 더 해이해진다.
이러한 과정에서 단지 자신의 지위를 두고, 남과의 비교를 통해 극단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라는 '엄친아 신화'보다는 타인과의 연대, 배려, 공감을 좀 더 강조하는 홍익인간의 이념이 더 현대 사회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라는 이념아래에는 이타성 뿐만아니라 이기성도 같이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상대를 이롭게 하는 행위는 전적으로 상대를 위해 헌신하라는 것이 아닌, 그 상대와의 공존을 도모하되 자신의 이익도 도모하라는 것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인간이란 전제 하에 자신의 이기성을 표출하기 위해서는 상대와의 공존은 필수적이고 자신의 욕구를 추구하되 상대에 대한 배려를 통해 공존도 추구하는 것은 지극히 사회아래서 당연한 과정이다. 사람이 극단적으로 이기적이면 외로워지고, 극단적으로 이타적이면 자신의 것이 없어 허해진다고 한다. 이럴 떄 홍익인간은 이기성과 이타성을 갖춘 이념이며, 가장 현대사회에 적절하다고 본다.
현대 4차 산업혁명 사회로 접어들면서 인간은 더 외로워지고 더 개인주의화되어 가고 있다. 1인 가정을 이루고 있지만 여전히 유튜브나 아프리카 tv등의 컨텐츠를 통해서 연대를 그리워하고 있고, 인터넷 동호회를 통해서 그 연대를 실현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더더욱 도덕성의 필요성에 대해서 재고해봐야 하지 않나 싶다. 이 도덕성은 타인을 전적으로 위한 헌신적인 도덕성이 아니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이기적인 도덕성으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이기성과 타인의 이타성을 같이 갖추고 있는 홍익인간의 이념은 정말로 현대 21세기에 필요한 이념이라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