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현충원에 김원봉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이유

민족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이기 전 애국지사였던 김원봉

by 감성소년


김원봉은 1910년 망국 이후 독립운동을 주도한 핵심세력이다. 김원봉이 조직했던 의열단,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조선의용대등은 당시 독립운동의 헤게모니를 주도하였다. 1910년 후 독립운동단체가 형성되면서 다양한 단체가 형성되었고, 처음에는 외교론, 실력양성론, 무장투쟁론, 준비론, 의열투쟁론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하지만 외교론, 실력양성론은 1919년 3.1운동과 파리강화회의에 대표사절이 파견되었지만 효과가 미온했던 그 이후로 실패나 다름없었다. 왜냐하면 이를 주창한 세력들이 대부분 친일파로 돌변했기 떄문이다. 임시정부의 대부분 세력들이 김원봉을 비판했지만 결국은 의열단을 모방한 한인애국단, 그리고 조선의용대를 모방한 한국광복군등 결국 김원봉의 혁명전략을 다 따라갔기 때문이다. 한국은 1919년 3.1운동의 정신을 이어받고 임시정부의 법통성을 계승했다고 하였다. 임시정부의 법통성, 정통승을 계승한다면, 그 들이 주 전략으로 삼았던 혁명전략의 모태인 의열단, 조선의용대, 민족혁명당의 대표인 김원봉을 절대 무시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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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원봉이 공산주의자라고? 이거야 말로 정말 성급한 일반화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A집단에 속했으니까 너 역시 A와 다름없는 취급을 받아야 한다. 이 논리는 전형적인 이념논리이다. 이전 문대통령의 김원봉 현충원 말이 나온 이후로 수 많은 보수라고 자칭하던 유튜버에서 하던 말이 김원봉이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에 현충원은 안된다라는 것이다. 현충원에는 독립운동가와 함께 625전쟁 공로자들도 묻혀있기 때문에 그 취지를 더럽히는 일이라고 한다. 그럼 김원봉은 공산주의자인 것인가? 김원봉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김원봉이 세웠던 혁명 단체들의 혁명 이념을 살펴봐라.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민족혁명당에서 모두 소자본가 및 농민들을 공존세력이라 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민족주의계의 독립운동가 역시 협력대상이라 삼았다. 이는 당시 공산주의 혁명 운동가들과는 이념이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ex 이르쿠츠크 공산당) 거기다가 민족혁명당의 강령을 보면, 보통선거와 정치,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만약 김원봉이 공산주의자라면, 당신들 말 맞다나 레닌주의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레닌의 이념을 계승했다면 레닌처럼 저런 문구는 없어야 했다(레닌은 1919년 혁명을 성공한 이후로 총선거에서 자신의 정당이 지자 의회를 해산하고 프롤레타리아 1당 독재를 선언했다) 그는 직접 자신의 말로 ‘농공 분야의 소자산 계급을 기초로 정치연맹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자산가를 기초로 한 국가가 공산주의자가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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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는 단지 조국독립을 열망한 이상주의자였다.


독립운동을 무조건적으로 찬양하지는 않는다. 독립운동의 실제 모습은 실제로는 참 슬픈 모습도 많다. 뜻에 조금이라도 다르면 지리멸렬하게 분열된 적도 많았고, 이념싸움, 당파싸움으로 얼룩진 모습이 자주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독립운동단체의 단합을 추구했던 사람이 있으니 그가 김원봉이다. 김원봉이 세웠던 민족혁명당은 그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다. 민족혁명당은 김원봉이 창설한 혁명단체로, 처음부터 그는 당시 재관에 있는 여러 혁명단체들을 아우르기 위한 노력을 했다(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 그리고 그 조직의 요직에 각 단체의 대표들을 고루 배치함으로써 당파싸움을 그치게 하기위해 노력하였다. 주요 요직에 조소앙, 이청천,김규식등을 임명함. 그리고 끊임없이 임시정부와 협력하고자 노력했으며(반면 김구는 임시정부의 우선권을 주장하며 반대함)그 결과 그가 직접 한국광복군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한 노력이 과연 김원봉이 열렬한 공산주의자고, 오직 계급해방을 목표로 한다면 가능할 것인가. 최소한 그의 글을 조금이라도 쳐본다면 그가 민족독립보다 계급해방을 중시한 사람이라고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같은 논리면 박정희는 해방전에는 친일파 만주군 장교였고, 해방 직후에는 남로당 빨갱이로 활동했으니, 그의 행적을 비하할 수 있지 않은가? 여기에는 해당하지 않고 오직 김원봉에게만 이념논리가 적용되는 건가? 당신들이 말하는 ’시대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는 그 논리는 당신들 편하려고 만든 논리인가. 박정희가 남로당 빨갱이였던, 만주군 장교였던 우리나라의 대통령이었던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고 그의 독재에 대한 과오도 분명한 사실이지만 (유신헌법이란 개같은 헌법 개정, 3선 개헌등 헌정질서를 파괴함) 나름의 안목으로 대미 외교에 있어 합리적으로 나라를 이끌었고 결론적으로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전쟁과 한일협정을 통해 얻은 자본을 바탕으로 조국 근대화를 이루기도 했다는 공도 인정해야 한다. 그처럼, 김원봉이 단지 레닌주의 학교를 창설했다는 것만으로 그의 활동 내막을 드려다 보지도 않고 단지 빨갱이 ’레닌‘이 들어갔다는 말로 그를 공산주의자로 치부하고 그가 했던 무수한 공을 간과하는 것은 정말로 1950년대 맥카시즘에 불과한 시대 착오적인 생각을 가진듯하다.



4. 북한에 협력을 했다고?


김원봉은 해방 직후, 당시 경창청장 장택상의 지시로 체포되었고 3일동안 인간 같지도 않은, 개만 못한 친일 경찰 노덕술에게 3일동안 모진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풀려난 후에 3일동안 대성통곡을 하다, 월북했다고 한다. 그가 주변의 암살당했던 독립운동가(여운형)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당연히 실망감은 둘 째이고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위협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더 대단한 건, 그가 북한에 있으면서도 공산당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어느 한 유튜브에서는 그가 남북전쟁에 활약했다는 이유로 포로심문을 통해서 밝혀졌다고 하는데...... 아니.......1980년대 남영동에서 모진 고문으로 자백을 받아낸 사례들을 보면... 친일 경찰들이 뭔 내용을 조작하지 못했을까? 일단 개인의 자백만으로는 불확실한 내용을 확실시하고 있다는 내용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본다. 그는 북에서 유일하게 남북전쟁을 반대한 인사로 알고 있다.



이상에서 김원봉이 왜 공산주의자가 아니고, 그가 애국자이며, 현충원에 있어도 될만큼 충분한 인물인지 알아보았다. 이념에 편향되면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단지 문재인이 싫어서, 그가 한 말이라서, 그가 추켜세운 김원봉을 폄하하는 것은 팩트에 입각하지 않은 선동에 불과할 뿐이다. 그의 행적들을 지식백과에서 잠깐만 찾아봐도 그는 우리나라에 기여한 바가 너무도 무궁무진하다. 그에 대한 평가가 다시 이뤄지길 절실하게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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