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로호 사건’에서 영국 국기를 바다에 버리는 중국인들을 묘사한 그림. 그러나 청 조정은 당시 애로호에는 국기가 걸려 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1차 아편전쟁 이후 맺어진 이후에도 여전히 영국의 대중국 무역적자는 해소되지 않았다.
일단 난징조약으로 5개의 항구가 개항되긴 하였으나 핵심산업단지에서 동떨어진 곳이었으며
또 중국인들의 반영의식도 상당했기에 영국의 주요 수출품인 면직물이 생각보다 팔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면직물에 비해서 영국 면직물의 질이 월등하게 좋은 것도 아니었기에 무역적자는 계속 되었다.
거기다가 여전히 중국에서는 영국을 오랑캐로 보고 있는 것에 대한 영국의 불만도 있었다. 이에 영국은 다시 침공 계획을 준비한다.
당시 영국 수상 파므스턴
그리고 마침내 영국은 꼬투리를 찾게 되었다. 그 것은 애로우호 사건이라 불리는 계기였다.
이는 당시 광동 지역에 출물하고 있었던 해적을 당시 양광총독 섭명첩이 체포하였다. 근데 문제는
그 해적들이 타고 있는 배가 영국산 배였는데, 이 때 영국에서는 일방적으로 체포 과정에서 섭명첩이
배에 꽂혀있는 영국 국기를 내려버렸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것이 영국을 모독하는 행위이며 국제법상 위법인 행위라고 주장한다(심지어 그 배 탑승자에는 모두 중국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_-)
당시 영국 수상이었던 파므스턴은 중국을 공격하기 위한 법안을 의회에 제출하였다. 하지만 이 것이 의회에서 부결되자 의회를 해산하는 초강수를 두면서까지 전쟁을 재개한다. 마침 중국의 토지를 탐내고 있었던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도 이와 함께 했다.
2. 전개
대고 포대를 점령하는 영국군.
영국 원정군은 1857년 12월 광동성을 점거한다. 그리고 계속 올라가면서 주요 지역을 점거한 후 북경 근처에서 조약개정을 요구하였다. 이에 맺어진 조약이 텐진 조약이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북경에 대사관을 연다.
(2) 영국에 4백만 냥, 프랑스에 2백만 냥을 배상한다.
(3) 기독교를 공인한다.
(4) 우장, 등주, 한구, 구강, 진강, 대만, 담수, 조주, 경주를 추가 개항한다.
(5) 아편 무역을 합법화한다.
이후 조약을 비준하기 위해 영, 프 연합국은 다시 북경으로 진격한다. 하지만 중국의 입장에서 자기들한테는 오랑캐인 그 들이 황제가 거주하는 북경으로 들어오는 것이 굉장히 치욕스러운 상황이었기에 다른 지역에서 비준을 맺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영불 연합군은 중국 수비대들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계속 들어가고자 했다. 그러자 결국 중국 수비대들의 공격에 의해 영불 연합군의 함선이 피해를 입게 된다. 이에 영불 연합군은 병력을 증원시켜 북경을 총공격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찬사를 들었던 원명원. 영프 연합군의 손에 폐허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베르사유 궁전이라고 불리는 원명원이 불타버렸다. 그리고 그 들은 점령지에서는 살육, 방화, 강간, 약탈이 이어졌다. 결국 1860년 10월 24일과 25일에 치러진 베이징 조약에서 톈진의 추가 개항, 구룡의 추가 할양이 이루어지고, 톈진 조약의 약 두 배에 달하는 배상금이 설정되었다.
그리고 중국인의 해외 이주가 자유화됨으로써 장차 중국인들이 하인으로서 영국의 저택에서 차를 따르거나, ‘쿨리’로서 미국의 철도를 놓거나 하는 일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또한 러시아는 별도의 조약을 요구, 아이훈 조약에서 공동영토로 만들어 두었던 연해주를 영토에 편입시켰다.
3. 내 생각
이 것이 신사의 나라라고 불렸던 영국의 진짜 민낯이다. 영국은 19세기 제국주의 시기에 이르러
'해가 지지않는 나라'라 칭해질 정도로 역사상 가장 드넓은 영토를 차지하였었다. 하지만 그 들이
영토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정말 엄청난 살상들이 이뤄졌고, 해당 국가의 영토는 황폐화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키운 식민지는 영국의 자본 시장을 더 확대시킬 수 있었지만, 동시에 그 들의
라이벌이었던 독일과의 경쟁도 더 치열해지게 되었다. 결국 이 들간의 경쟁은 1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
으로 이어지면서, 영국은 세계 1강대국의 지위를 미국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이 것이 정복전쟁의 본질이다. 현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말도 안되는 이유로 침공하고 있다.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라고 주장하지만 결국 과거 러시아 제국시기의 영토를 확보하기 위함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신제국주의의 탄생이다. 중국 역시 여전히 대만을 노리고 있고, 북한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여타 이웃 나라들의 주권을 해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이러한 신제국주의의 결론은
결국은 공멸일 뿐이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를 위함이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과거의 사건들이 비슷한 양상으로 현재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경우를 봤을 때,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또한 정말 근시안적인 행위일 수 밖에 없다.
이미 러시아에 대한 전세계의 비판과 제재가 가해지고 있으며 러시아 국내 안에서도 푸틴에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어서 러시아가 침공을 멈추고 인류 공영의 길을 가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네이버 지식백과] 제2차 아편 전쟁(애로호 전쟁) - 애로호 사건, 두 번째 전쟁의 도화선이 되다 (전쟁사, 함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