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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소년 Mar 20. 2022

오늘의 역사는?3월20일(나선정벌)


반갑습니다

갬성입니다~!

오늘은 3월 20일이죠~! 오늘의 역사는 무엇일까요

바로 나선정벌입니다!

개인적으로 참 멋졌고 괜찮은 군주였던 효종! 그의 삶과

나선정벌에 대해서 알아보시죠!





1. 효종

효종의 아버지는 인조입니다~ ! 다들 아시다시피 인조는

삼전도 굴욕을 겪습니다. 청나라에 항복을 선서한 것이죠.

그리고 항복 이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두 왕자도 인질로 청나라에 끌려가게 됩니다.

소현세자의 경우 인질 생활 중 명나라의 대신들이 그 간의 위엄은 다 잃고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목숨을 구걸하는 장면을 봤으며 동시에 발달된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인 청의 문화에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봉림대군은 볼모 생활 중 느꼈던 굴욕적인 순간들을 기억 속에 꼭꼭 저장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똑같은 시기, 똑같은 곳에 갔지만 다른 것을 느꼈던 두 사람의 운명도 달라졌습니다.

적장자 승계의 원칙에 따라 소현세자가 왕위에 올라야했지만 청의 문물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했기에

인조의 미움을 사게 됩니다. 결국 그는 의문의 죽움을 당하게 되었고(독살설이 유력합니다) 차남인 봉림대군이 왕위에 올라 효종이 되었습니다. 그는 정말 아버지의 심적인 부분을 잘 대변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청에볼모로 잡혀있을 때, 명청간의 전쟁에 꽤 많이 동원되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청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차게되었는데요



그리고 왕이 되자마자 그 복수심을 시행하기 위한 북벌을 위한 여러가지 준비를 하게 됩니다. 아래는 그가 실시한 정책들을 추려봅니다.



1. 북벌 위한 군인 확충(어영청 설치-5군영 중 하나)
2. 대동법 확대
3. 화폐제도 도입 시도(구리 도입 시도))
4. 무과 정기적으로 신설
5. 무인들의 지위 향상- 승지를 무인으로 임명
6. 벨테브레 표류하자, 박연이란 이름을 내려 주고 훈련도감에 배속시켜 새로운 성능의 조총과 대포 제작케 함.



이 밖에 그는 지방에 있는 군사시설들을 관리를 파견하여 감찰하도록 하게 하였고

무신들이 직접 왕을 알현하여 군사 훈련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하는 '윤대무신제도'를 도입하기도 합니다. 이는 이후 정조, 흥선대원군 때 다시 도입되는데요. 개인적으로 봤을 때, 이 무인들의 지위를 향상시키고자 노력했던 이 들은 생각해보면 꽤나 괜찮은 왕들이었습니다.

북벌을 주장했지만 북벌을 반대한 송시열.

하지만 그는 그가 북벌을 실현하기 위해 등용했던 송시열에 반대에 의해 북벌이 거의 좌절되기 직전에 이릅니다.


송시열은 송자대전등의 책에서 북벌의 당위성등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줄 곧 명과의 의리를 이야기하면서 북벌을 주장했으나 실상 효종이 진짜 북벌을 도모하려하자 백성들의 생활 안정을 이야기하며 반대합니다.

그가 말한 북벌은 정신적 북벌을 의미한 것이지요.



즉 청을 배타적으로 생각하는 태도만을 의미했습니다. 결국 그 들의 전신인 서인들에 의해 벌어진 병자호란에 대한 책임을 무마하기 위한 술책이 송시열의 북벌이었던 것입니다 ㅡㅡ




2.  1,2 차 나선정벌

러시아군

이렇게 육성한 군대를 북벌에 제대로 활용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1650년 러시아 장군 하바로프가 탐험대를 이끌고 흑룡강에 도달하여 연안의 지형을 조사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청의 영향권에 대해 위력을 행사하자, 청에서 군대를 파견했으나 러시아군에 패하죠.


나선정벌에 나선 조선 조총수

이에 당시 집정대신이었던 도르곤은 조선 정벌 당시의 조선 조총병의 우수성을 인지하고, 조선에 조총수 파병을 요구합니다. 이에 효종은 청의 군사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조총수 100명과 고수 등 보조군사 50명등 총150명의 군사를 청에 파병합니다. 그리하여 조청연합군은 러시아군을 무찌르게 되지요.



그리고 1658년 이번에는 청에서 대대적으로 원정대를 파견하여 스테파노프가 지휘하는 러시아의 군사를 완전히 몰아내고자 했습니다. 이에 조선에 다시 한 번 조총수 파병을 요구하는데요. 이번에도 효종은 조총수 200명과 고수 등 총 260명을 파병했습니다. 당시 사령관으로 신숭겸 장군의 후손인 신류가 임명 되었지요. 이 전투에서 조청 연합군은 대승을 거둡니다.


특히 조선군 조총수의 위력은 실로 적을 압도하여 이 소문이 멀리까지 퍼지게 되었습니다. 청에서는 조선 조총대의 공적을 인정해 장졸들에게 벼슬과 상을 내렸습니다. 러시아의 경우 이 전투에서 사령관이 죽고 주력 군사가 궤멸되어 약 7년 동안 흑룡강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3. 내 생각

영화 속 김성일

강력했던 조선의 조총병. 이를 잘 육성하고자 했던 광해군. 그리고 이를 이괄의 난으로 모두 잃었던 인조.

그 잃었던 병력을 다시 어려운 상황에서 기르고자 했던 효종. 참 운명의 장난인지 역사는 똑같지는 않지만 어느정도의 유사성을 같고 반복이 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임진왜란 직전에 서인, 동인에서 일본에 사신단을 파견하고 서인에서는 그 중 전쟁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김성일의 말을 듣고 전쟁 준비를 하지 않았다가 그대로 개박살이 났던 임진왜란. 그리고 이후 다시 전쟁 방지를 위해 대비하고자 부단하게 군사 육성을 위해 노력했던 광해군.


하지만 이를 다시 말짱도루묵으로 만들고 각종 왕권 강화 드라이브로 공신들과 마찰을 일으키고 결국 북방을 수비하던 핵심 군대를 통솔하던 이괄의 난을 스스로 야기하여 북방의 병력을 모조리 싹쓰리 당한채 청군한테 계속 도발하다가 결국 삼전도에서 굴욕을 당한 인조. 그리고 다시 전쟁에 대비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효종. 역사는 반복됩니다.



하지만 어느정도의 비슷함, 유사함은 가지지만 또 다른 패턴을 가지기도 하지요. 저는 이 것이 오늘 날에도 유사하다고 봅니다. 저는 보수주의자입니다. 국방이 강했으면 좋겠고, 우리나라가 정말 부국강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생각이 오래되고 낙후되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남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시기 바랍니다. 그 상황에서 과연 유엔은 무엇을 했는지, 경제적 재제를 하지만 러시아에서 현재 자행하고 있는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입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아니 일단 우리 스스로를 자위할 수 있는 국방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하구요. 하지만 그런 보수주의자인 저이지만 굳이 북한을 도발하는 선제타격론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거는 허상이기 때문입니다. 선제 타격을 해서 주요시설을 요격하여 전쟁 억제력을 갖자. 그것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북한은 세계 군사 2위인 중국, 러시아와 거의 혈맹 관계입니다. 그 쪽에서 첨단 기술을 제공해주고 있으며 만약 우리가 선제타격을 하면 당연히 중국에서 선제 타격에 대한 정보를 주겠지요. 그 순간 북한이 현재 갖고 있는 약 1만 6천개 이상의 미사일이 서울 상공을 가로질러 올 수 있습니다. 과연 이 것이 전쟁억제력이란 말입니까. ....



더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마치 400년 전 북벌을 이야기하면서도 실제로 북벌을 주장하면 '~~때문에 안된다', '~~때문에 안된다'라 주장했던 송시열 같은 인간이 왠지 현재 지금 우리나라 대한민국에도 꽤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멸공이란 호전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본인은 진작 병역기피했던 정용진씨.

전쟁을 이야기하면서 본인은 군대에 가지 않았던 인간. 비열한 방법을 통해 병역기피를 해놓고 멸공을 이야기하는 인간들. 마치 병자호란을 야기했던 서인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맘에 있지도 않은 북벌을 이야기하는 것과 너무 비슷해서 그냥 이야기 해봅니다.

그리고 그렇게 원래 의도와 다르게 북벌이 아닌 오히려 북조가 되어버린 꿈. 그 현실인 나선정벌. 너무도 슬픈 일이아닐 수가 없는데요.



강한 조선을 꿈꿨고, 그를 위해 정말 많은 사회개혁을 시도했던 순수했던 효종의 꿈인 북벌. 그에 반해 간악하고 아무런 책임의식은 일도 없으며 현실감각도 없고 오로지 권력욕심만 있었던 송시열을 필두로한 서인들. 민주주의 사회인 현재. 우리는 이 효종과 서인들을 선별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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