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성소년 Jul 04. 2022

오늘의 역사는? 7월4일 이한열 열사 죽음


반갑습니다 갬성입니다!

오늘의 역사는 이한열 열사의 죽음입니다! 이에 대해서 알아보시죠! 




1.생애 


이한열 열사는 광주에서 태어났었습니다. 자신의 어린 시절 전두환 일당이 져지른 광주학살을 두 눈으로 목격했으며 그 과정에서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의식이 형성된 것 같습니다. 그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들어갔습니다. 그 안에서 그는 만화사랑이란 동아리를 창설했습니다. 이는 1987년 53사태등 민주화 운동권이 대중들과 멀어지는 사태까지 이르르자 그는 직접 친대중적인 민주화 운동권을 형성하기 위해서 만든 동아리가 만화사랑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이한열 열사는 대학생들을 운동권으로 쉽게 포섭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2. 열사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다


1987년 6월 9일 이한열은 '6·10 대회 출정을 위한 범연세인 총궐기 대회'에서 시위대의 일원으로 참여합니다. 그날 오후 4시 40분경 전투 경찰로부터 도서관학과 이종창과 이한열은 전투경찰들에게 쫓기며 교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때 일부 전투경찰들이 최루탄을 수평으로 직사하였고 이 것이 이한열의 뒷머리에 맞아 그의 얼굴에서 피가 번지게 되었습니다.이 때 이한열 열사를 이종창은 끌어안고 학교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다가 같이 뛰어온 학생들에 의해서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겼으나, 오후 5시 30분경부터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합니다.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한 그의 말은 아래와 같습니다. 



내일 시청에 나가야 하는데 





이 때 이한열 열사의 왼쪽 뇌부분 전체가 피멍이 들어 있었다고 하네요.. 


결국 6월 29일, 그토록 이한열 열사가 바라던 직선제 개헌이 이뤄지는 629선언이 이뤄졌으나 이한열 열사는 의식불명된지 25일만인 1987년 7월 5일  오전 2시 5분에 2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습니다. 



영정을 들고 있는 우상호 당시 총학생회장과 태극기를 들고 있는 우현 당시 총학생회 사회부장.[17]



그의 장례식은 1987년 7월 9일날 민주국민장으로 거행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민주당 원내대표인 우상호 총학생회장이 민주국민장 집행위원장을 지냈다고 하네요. 민주국민장은 연세대학교, 신촌로타리, 서울시청을 거쳐 광주직할시 5.18묘역의 순으로 이동되며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추모 인파는 160만명으로 박정희대통령의 추모객인 200만명다음으로 2번쨰로 많은 행렬이었다고 하네요. 당시 문성근 의원의 아버지인 문익환 목사는 이 때 정말 희대의 명연설을 합니다. 민주화 과정에서 희생된 25명의 열사와 광주 2천여 영령들의 이름을 부르짖는 것이었습니다. 

  



"전태일 열사여![18] 김상진 열사여![19] 장준하 열사여![20] 김태훈 열사여![21] 황정하 열사여![22] 김의기 열사여![23] 김세진 열사여![24] 이재호 열사여![25] 이동수 열사여![26] 김경숙 열사여![27] 진성일 열사여![28] 강상철 열사여![29] 송광영 열사여![30] 박영진 열사여![31] 광주 2천여 영령이여! 박영두 열사여![32] 김종태 열사여![33] 박혜정 열사여![34] 표정두 열사여![35] 황보영국 열사여![36] 박종만 열사여![37] 홍기일 열사여![38] 박종철 열사여![39] 우종원 열사여![40] 김용권 열사여![41] 이한열 열사여![42]"


이한열의 추모식에서 한 명연설.[43] 문익환 목사의 절절한 몸짓과 애절한 목소리가 영상으로 남아 있는데 영화 1987에 실리기도 했다.[44]




3. 내 생각 


이렇듯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피어나는 꽃이 었습니다. 한 저명한 외국인 기자는 그렇게해서 시행된 대선에서 노태우가 당선되는 것을 보고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이뤄지는 확률은 쓰레기통에서 꽃이 피어나는 확률과 같다'라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쓰레기통에서 꽃이 필 확률로 꽃은 피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가 서서히 여물어가고 있는 상황이 작금의 상황입니다. 한국의 위대한 국민들은 자국의 모순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불법적인 국정농단 사건에 대해서 국민들은 지엄한 심판을 내렸고 그 결과 박근혜 전대통령은 탄핵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다시 일어난 민주당 정권 역시, 국민들의 민생을 챙기는 문제(부동산 대책)를 해결하는 것에 실패했고, 미투 운동과정에서 오히려 도덕적인 부분에서 결함을 계속해서 보이는 등의 모습으로(오거돈, 박원순 전시장)결국 다시 한번더 국민들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렇듯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견제 시스템은 한국 내에서 너무도 잘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집권자로 하여 '당신도 얼마든지 국민들의 심판을 받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란 무언의 압박으로 작용함으로서, 위정자들이 권력을 남용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한 대한민국. 그 역사를 저는 사랑합니다. 하지만 과연 1987년으로 돌아가 이한열 열사와 같은 삶을 살 수 있는가라 묻는다면 고민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들의 삶을 존경하려 합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걸 실천하셨고 그 덕분에, 그 들의 피,땀으로 이룬 직선제 개헌으로 너무도 편하게 원하는 사람을 대표로 선출할 수 있는 투표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도 평범했던 엘리트 청년 이한열. 오늘은 이한열 열사가 돌아가신지 35년이 흐른  해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갖는 투표권의 소중함을 생각하면서 그의 삶을 기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갬성이었습니다! 





        %22https%3A%2F%2Fi.ytimg.com%2Fvi%2FD5PyjaMTHjU%2Fhqdefault.jpg%22&type=ff500_300"        영화 '1987' 마지막 장면

수익창출 안합니다. 1987 못보신 분들 보시라고 올린 영상이니뭐라 하지 마세요ㅠ

youtu.be



작가의 이전글 오늘의 역사는? 6월29일(629선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