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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소년 Jul 21. 2022

오늘의 역사는? 7월9일(장거정)


#장거정 #명말재상 #명대마지막희망 #신종


반갑습니다  갬성입니다! 


오늘의 역사는 장거정입니다!







1.당시 상황



명나라 16세기 말. 그야말로 명나라는 최악의 상황에 치닫고 있었습니다. 영락제 이후 제대로 된 황제가 등장하지 않고 있었으며 북으로는 몽골이 남쪽에서는 왜구가 득세하고 있는 이른바 북로남왜의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지속적으로 환관의 횡포는 계속되었는데 구체적으로는 영락제 때 설치한 특무기관인 동창에 이어서 서창, 남창까지 설치하여 그야말로 환관의 세상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가 통제력은 약화되어만 갔고 명대 초기에 실시되었던 이갑제(유교적 자치질서로서 반관 반민인 이갑수호가 국역을 대신 수행하게 하는 자치 질서의 일종)가 완전히 무너지고 각지에서 농민들이 가난을 못이겨 유랑하게 되었습니다. 세금은 나날이 줄어드는 가운데 당시 과거 합격자였던 신사층들은 이제 중앙 관직 진출을 포기하고 지방으로 내려가 향촌에서 대토지를 형성하여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중국 북경을 포위하여 큰 중격을 주었던 알탄칸 







2. 명재상 장거정의 등장과 활약 



장거정은 황제 만력제의 스승이었습니다. 그는 만력제가 즉위하자 10년간 내각수보의 자리에 올라서 국정을 장악하였습니다. 그가 생각하기에 당대 가장 큰 문제는 중앙 통제력 약화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만력제는 고성법이란 새로운 법을 시행합니다. 고성법은 황제의 재가를 받은 사안에 대해서 기한 내에 완수하고 이 수행에 대해 내각수보의 평가를 받게하는 법이었습니다. 이 것은 기존에 형식적으로 있었던 내각 수보의 지위를 법제적으로 인정한 결과를 야기하기도 했으며 중앙부터 지방에 이르는 모든 관리들을 상벌을 통해서 통제함으로서 행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중앙 통제력 하에 일조편법이란 꽤 괜찮은 법을 시행합니다. 당대 사회에서는 잡세가 너무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세금을 수취하는 과정에서 부조리하게 중간 이득을 관리들이 취득했는데요. 이에 장거정은 전부(토지세)와 요역을 일괄화하여 은으로 납부케하는 법이었습니다. 이로서 잡세도 많이 줄어들고 과세대상을 토지로 옮겨서 재산세적 효과를 극대화시키기도 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땅을 많이 가진 부자에게는 많은 세금을, 적게 가진 빈농에게는 적게 내게 함으로서 재정확충 및 농민 구제효과도 있었지요. 동시에 세금도 효율적으로 수취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동시에 상업 발달이란 당시 상황을 고려한 꽤 괜찮은 법이었지요 



그리고 동시에 만력제에게 사치를 금하고 긴축재정을 강조합니다. 이는 아마 왕도정치를 추구했던 유교적 이상에 입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왕도정치: 도덕성을 갖춘 왕이 덕치를 하여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기존 지배질서에 귀의하게하는 유교적 이상정치형태)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북방의 몽골족과는 화약을 맺어 당시 알탄칸을 순의왕으로 봉하고, 국경 근처에 호시(이민족과 교역하는 시장)을 재개함으로서 몽골족들의 니즈(식량)를 충족시켜 평화 상태를 만들었습니다. 동시에 남쪽에는 척계광을 파견하여 왜구를 섬멸케 했으며(이 과정에서 기효신서에 입각하여 3수병을 만들었습니다. 이 3수병체제[포수, 사수, 살수]는 이후 조선에 전달되어 훈련도감에서 이용됩니다) 여진족 안정을 위해 총병으로 이성량을 파견했습니다. 대내외적으로 안정을 취한 장거정이었지만 그도 역시 사람이었습니다. 만력제에게는 사치를 금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게 했지만 그가 집권하던 시절 그의 아들들의 비리가 터졌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은 후 그의 집에서는 수 많은 부정부패로 받은 재물들이 쏟아져 나옮으로서 만력제의 분노를 야기했죠. 결국 그는 부관참시를 당합니다. 






3. 하지만 이후 



만력제는 장거정이 있던 시기까지만 있었어야 했습니다. 이후 암군으로서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줍니다. 전쟁을 좋아하여 만력 3대정을 치뤘고 이 과정에서 엄청난 재정 소요가 발생하자 환관을 지방에 파견하여 세금을 독촉케합니다. 이 과정에서 안그래도 힘들었던 농민들이 곳곳에서 들고 일어났으며 결국 명말에 이자성의 난으로 이어져 명나라가 멸망하게 되는 루트를 가게 만든 장본인이 만력제였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임진왜란에 지원병을 파견해준 조선에서 만큼은 암군 만력제를 신으로 모셨고, 조선의 집권자였던 송시열의 유언에 따라 만력제를 모시는 대보단이란 사당을 만들어 그를 신격화합니다. 중국에서는 최대의 암군이라 불리던 그가 조선에서는 신이라 불리는 아이러니가 만들어진 겁니다. 





4. 내 생각 

명황제를 모신 대보단 





세상에 참 완벽한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영역에서 뛰어난 사람은 또 다른 영역에서 모자란 부분이 있는 것이 인간인듯 합니다.  명나라가 가야 할 길을 정확하게 알았고, 그 길에 따라 집권 이후 순탄하게 개혁을 이뤘던 장거정. 그의 방향은 적절했지만 진작 자기 자신은 비도덕적인 행위로 결국 만력제의 분노를 야기했고, 만력제로 하여금 장거정이 마련한 개혁안을 대부분 파기하기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의 비도덕적인 삶 역시 명 멸망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오늘은 바로 그 불완전했던 미완의 개혁가 장거정. 장거정이 죽은 날입니다. 과연 국가의 위정자, 개혁가는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요. 도덕성 역시 위정자의 중요한 덕목임을 알려주는 중요한 인물인 장거정. 그의 삶을 보며 위정자들이 많은 생각을 하고 깊이 반성하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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