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배신하는가』가 던지는 불편한 질문
민주주의 국가는 보통 이렇게 말한다.
“법대로 하면 된다”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법이 많아질수록, 규정이 촘촘해질수록
우리는 더 민주적으로 살고 있을까?
신디 L. 스캐치의 『법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배신하는가』는
이 익숙한 질문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법을 너무 믿은 나머지,
우리는 시민으로서 생각하는 법을 잊어버린 건 아닐까?”
이 책이 던지는 핵심은 의외로 단순하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건 악법이 아니라
법을 만능 해결책처럼 여기는 태도라는 것이다.
원래 법이란 무엇인가.
해도 되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나누는 최소한의 규칙이다.
그런데 우리는 갈등이 생길 때마다
토론 대신 법을 찾고,
합의 대신 판결을 요구한다.
그 결과 벌어진 일은 명확하다.
공동체의 자율성은 약해지고
시민은 판단 주체가 아니라
법의 명령을 기다리는 순응자가 된다
민주주의의 주인이 시민이 아니라
법과 제도가 되어버린 순간이다.
저자는 말한다.
법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사회일수록
시민성은 급격히 쇠퇴한다고.
왜냐하면 스스로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법이 대신 판단해주고,
제도가 대신 책임져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본래
불편하고, 시끄럽고, 느린 체제다.
시민이 직접 고민하고, 부딪히고, 설득해야 작동한다.
그 과정을 법으로 생략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겉모습만 남고
내용은 텅 비게 된다.
책에서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지도자를 따라가지 말라”는 첫 번째 수칙이다.
선거로 뽑혔다고 해서
그 지도자가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보장은 없다.
저자는 프랑스의 장마리 르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사례를 통해
합법성과 민주성은 전혀 다른 문제임을 보여준다.
법적으로 정당한 권력도
시민이 비판을 멈추는 순간
충분히 민주주의를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해결책이 법 개정이나 제도 개혁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나은 법이 아니라
더 강한 시민이다.
그리고 시민이 갖춰야 할
여섯 가지 행동 수칙을 제시한다.
지도자를 맹목적으로 따르지 말 것
권리를 누리되 책임질 것
물리적 공론장에서 계속 교류할 것
삶의 기반을 공동체 안에서 다시 세울 것
법보다 먼저 타문화를 포용할 것
다음 세대를 ‘시민’으로 교육할 것
이 모든 수칙의 공통점은 하나다.
질서는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만들어진다는 인식이다.
이 책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선거일에만 작동하는 제도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매일 타인의 의견을 듣고,
불편함을 견디고,
책임을 나누는 생활 과제다.
법은 그 과정을 돕는 도구일 뿐,
대체재가 될 수 없다.
법이 앞서면 시민은 뒤로 물러나고,
시민이 사라진 자리에
권위와 폭력이 들어온다.
『법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배신하는가』는
법을 부정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법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책이다.
법 위에 시민이 있는 것이 민주주의다.
시민 위에 법이 있는 순간,
그 체제는 이미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뉴스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
“이건 합법인가?”보다 먼저
“이건 민주적인가?”를 묻게 된다.
그 질문을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