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에서 보는 태평성대를 마련한 시대적 특성!)
세종대왕.
조선 왕조에서 ‘대왕(大王)’이라는 칭호가 붙은 군주는 세종이 유일하다.
그만큼 세종은 도덕성과 정치적 성과, 그리고 문화적 업적까지 모두에서 압도적인 평가를 받는 군주다.
세종의 치적을 간단히 정리해보자.
세제 개편, 4군 6진 개척을 통한 영토 확장, 농법 연구, 음악 연구, 역법 연구.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까지도 사용되는 한글 창제.
이는 성리학이 추구한 ‘애민(愛民) 정신’을 가장 구체적으로 실현한 정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다.
이 모든 업적이 정말 세종 개인의 능력만으로 가능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듯,
세종의 정치·사회·문화적 성과는 태종이 마련한 안정된 왕권 구조 속에서 가능했다.
태종 대에 이뤄진 대대적인 외척 숙청과 공신 세력 정리가 없었다면,
세종은 정책을 펼치기도 전에 권력 균형과 정치적 눈치를 보느라 국정 운영에 집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시 말해,
세종 시대의 거의 모든 성과는 태종이 먼저 ‘피를 묻히며’ 정리해 둔 정치적 기반 위에서 꽃핀 결과였다.
그렇다면 이런 구조는 비단 한국사만의 특수한 사례일까?
그렇지 않다.
세계사에서도 선왕이 권력을 정비하고, 후대의 군주가 태평성대를 완성한 사례는 분명히 존재한다.
러시아 근대화의 출발점은 표트르 대제였다.
그는 귀족의 특권을 약화시키고 서구식 제도를 강제로 도입하며 국가 시스템을 근본부터 개조했다.
개혁은 거칠었고 폭력적이었지만, 러시아를 중세 국가에서 근대 국가의 궤도로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이 기반 위에서 등장한 인물이 **예카테리나 2세**다.
그녀는 계몽사상을 수용해 행정과 문화를 정비했고, 러시아를 유럽 열강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표트르 대제가 국가의 뼈대를 만들었다면,
예카테리나는 그 위에 전성기라는 살을 붙인 군주였다.
프로이센의 부흥 역시 같은 구조를 보인다.
프리드리히 빌헬름는 군대·관료·재정을 집요하게 정비한 군주였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국가는 철저히 ‘작동하는 기계’로 변모했다.
그 아들 **프리드리히 대왕**은 이 시스템 위에서 계몽군주로서 예술과 철학을 꽃피우고,
동시에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프로이센을 유럽 강국으로 끌어올렸다.
아버지가 국가를 만들었다면,
아들은 국가를 하나의 문명으로 완성시켰다.
영국의 사례는 조금 더 복잡하지만 의미는 분명하다.
헨리 8세는 성군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사생활 스캔들과 강압적 통치는 지금까지도 비판의 대상이다.
그러나 그는 교황권에서 벗어난 국가 주권과 왕권 중심 체제라는 되돌릴 수 없는 구조적 변화를 남겼다.
이 불안정한 유산을 정리해 태평성대로 이끈 인물이 바로
엘리자베스 1세다.
엘리자베스는 종교 갈등을 조정하고 재정을 안정시키며, 영국을 해양 강국으로 도약시켰다.
그녀의 위대함은 아버지를 닮아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남긴 혼란을 국가 시스템으로 봉합했기 때문이었다.
태종–세종,
표트르 대제–예카테리나 2세,
프리드리히 빌헬름–프리드리히 대왕,
헨리 8세–엘리자베스 1세.
이 사례들이 보여주는 공통점은 분명하다.
태평성대는 한 명의 성군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먼저 권력을 정리하고,
그 위에서 다음 세대가 비로소 국가를 바라볼 수 있을 때 가능해진다.
세종의 위대함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위대함은 태종이 먼저 만들어 놓은 정치적 질서 위에서 비로소 현실이 될 수 있었다.
역사는 언제나 결과만 기억하지만,
그 결과를 가능하게 한 기초공사의 시간 역시 함께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