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존주의 시대,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우리는 요즘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
잘 사는 법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는 법을.
『저편에서 이리가』는
그 생존의 감각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소설이다.
눈 덮인 압록강 전선.
온실 마을.
짐꾼의 허무한 죽음.
그리고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청춘.
이 소설은 말한다.
생존은 영웅 서사가 아니다.
생존은 외로움의 다른 이름이다.
유안은 짐꾼이다.
늘 죽음을 농담처럼 말한다.
“나는 요절할 거야.”
하지만 친구 도진은 그 말을 막는다.
생명을 우스갯거리로 만들지 말라고.
이 장면이 묵직하다.
왜냐하면 요즘 우리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인생 뭐…”
“망하면 끝이지.”
냉소가 유행이다.
그런데 냉소는 지혜가 아니다.
상처를 덮는 방식일 뿐이다.
기주는 군인이다.
그녀는 “생각이 너무 많다”는 말을 듣는다.
혐오하지 않을 이유를 고민하는 것,
적을 미워하지 못하는 것,
군인답지 않다는 말.
여기서 소설은 질문한다.
생각하는 인간은 체제에 어울리지 않는가?
이 장면이 날카롭다.
요즘은 ‘빠른 판단’이 미덕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멈춰 생각하는 인간’이야말로
진짜 살아 있는 존재라고 말하는 듯하다.
도진이 유안에게 맡긴 책.
‘생명도감’.
너덜너덜해져 제목도 보이지 않지만
버릴 수 없는 책.
이 상징이 아름답다.
쓸모없어진 세계에서도
누군가는 생명을 기록한다.
이건 기억의 문제다.
우리가 살아 있었다는 증거를
누가 지켜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가장 강렬한 장면은 이것이다.
피범벅이 된 백건에게
기주가 묻는다.
“춥지 않아?”
그 질문 하나가
그를 살린다.
거창한 신념도,
영웅적 구호도 아니다.
누군가가 나의 상태를 묻는 순간,
우리는 다시 살아 있음을 느낀다.
이 장면은
요즘 시대에 가장 필요한 문장처럼 느껴진다.
『저편에서 이리가』는
전쟁 소설이 아니다.
청춘 소설도 아니다.
이건 존재에 대한 소설이다.
생존은 무엇인가
군인은 무엇인가
생각하는 인간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우리는 왜 서로를 쉽게 혐오하는가
누군가의 한 문장이 어떻게 생명을 붙드는가
차갑고 건조한 문장 속에서
이 질문들이 계속 맴돈다.
지금 우리는
경제적 생존, 사회적 생존, 정치적 생존을 말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묻는다.
살아남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살아 있음을 느껴야 하는가?
별이 잘 보이는 압록강 밤하늘.
그 장면이 오래 남는다.
남쪽과 북쪽의 눈은 같지만,
하늘은 다르게 보인다.
환경은 같아도
시야는 다를 수 있다는 뜻일까.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좋아하는 독자
군사·분단·생존 서사에 관심 있는 사람
묵직한 상징을 곱씹는 독서가
차갑지만 뜨거운 문장을 좋아하는 독자
172쪽.
짧지만 가볍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