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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 사랑해서 결혼했어?

장난치다가 결혼까지 함

by 알쏭달쏭

글을 하나 마무리 짓고 침대에 누웠다. 옆에서 남편은 쇼츠를 보고 있었다. 나는 문득 쇼츠 속 여주인공의 열연을 보다가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여보, 나 사랑해서 결혼했어?"


우리 남편은 맥락없는 나의 질문에 이미 오랜 시간 단련되어 온 사람이다. 이 정도 질문은 거뜬하다.


"아니? 때 되었는데 옆에 있는 게 당신이라서 결혼했지 히히"


이 황당하고 기발한 대답에 나는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린다. '사랑한다'는 뻔한 대답은 언제나 예측 가능하지만, 남편의 답변은 늘 나의 예측 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에 더 재미있다. 남편은 아내를 가장 크게 웃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에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사실 남편과 나는 첫 만남에서 '좋은 사람 만나세요'라는 덕담을 나누고 깔끔하게 헤어졌던 사이였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내가 뜬금없이 재회 연락을 하면서 이 모든 사건이 시작되었다.


아침에 카톡을 보냈지만, 역시나 답장은 없었다. 나 같아도 잘 안돼서 멀어진 여자가 불쑥 연락하면 '얘 뭐야?' 하며 피했을 것이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지옥 같은 출근 버스를 타고 회사에 도착해서야 메시지를 확인했다는 늦은 답장이 왔다. 그런데 다시 이어진 하루 종일의 카톡 대화 속에서, 남편은 첫 만남 때의 어색한 긴장감은 온데간데없이 가장 편안한 친구처럼 느껴졌다. 나 또한 그 편안함에 빠르게 익숙해졌다.


그와의 대화 중, 회사에서 월급을 떼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웃으며 농담을 하는 순간이 있었다.


대표님이 본인 엘리베이터 층을 대신 눌러줬다며, 월급을 떼이면 갑(甲)처럼 회사를 다닐 수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 말에 나도 웃게 되었다. 월급이 밀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심각한 일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데도, 남편은 그 고통을 유머로 승화시켰다.


나라면 한없이 우울해지고 주변 사람까지 기를 빨아먹을 텐데, 이 남자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심각해지지 않고 이렇게 웃어넘길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심지의 단단함과 유머 감각이 나에게는 엄청난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다시 만남을 이어가던 어느 날, 즉석 떡볶이를 같이 먹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눌은밥을 숟가락으로 박박 긁어먹고 있는데, 남편이 불시에 일격을 가했다.


"소식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나는 들키지 말아야 할 치부를 들킨 사람처럼 크게 웃다가 밥 숟가락을 떨어뜨릴 뻔했다. 이 사람 앞에서는 내 모든 가식적인 모습이 무장해제 되는 것 같았다. 그의 개그와 애드립 앞에서 나는 늘 가장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나로 돌아갔다.




두 번째 만남이 끝날 무렵, 전화 통화를 하던 중 내가 웃기려고 애드립을 생각해 냈다.


"예전에는 세 번 정도 만나고 결혼했다고 하던데, 이거 큰일이네?"


그러자 남편은 나의 농담에 최대로 재미있는 대답으로 응수했다.


"아 그럼. 자고로 예부터 그래왔고 그래야지. 안 그래도 우리 엄마가 날짜를 알아보시는 것 같아."


문제는 우리가 아직 사귀지도 않았던 단계였다는 것이다. 내가 "잊지 말자. 우린 아직 사귀지 않았다"라고 상기시키면, 남편은 또 "아차차, 맞다. 우리 아직 안 사귀지?"라며 능글맞게 응수했다.


이런 쉴 틈 없는 유머와 애드립 속에서, 우리는 그해 말, 만난 지 단 9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문득 궁금해져서 남편에게 다시 물어봤다.


"여보, 근데 어쩌다 나랑 결혼하게 된 거야? 날 어딜 믿고 결혼해. 내가 사기꾼일 수도 있잖아?"


그러자 남편은 또 세상 신박한 대답으로 나를 웃게 만든다.


"아, 치맥 먹고 튀어서 언젠간 꼭 복수를 하려고 했는데 잘됐지. 자기 발로 걸어왔으니 복수할 테다, 반드시!"


믿기지 않겠지만, 우리의 결혼은 이렇듯 장난과 유머, 그리고 치맥 값을 받아내려는 복수심으로 시작되었다. 이 모든 것이 개그 욕심 많은 남자와, 그의 말에 조건반사적으로 웃는 여자의 합작품이었다.


장난치다 결혼할 수도 있으니, 애드립과 유머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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