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시트콤인 듯
애들 일찍 하원해서 급 캠핑을 떠나기로 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덕에 팔자에도 없는 여행을 자주 다니곤 하는데, 계획 세우기에 젬병인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은 '짐 싸기'였다. 계획과 예약 등 모든 준비는 남편담당이고, 둘이서는 그 역할이 암묵적으로 합의된 상태이다. 그렇게 내 역할은 '짐싸개'가 되어, 그렇게 불리곤 했다. 아침 운동을 힘들게 하고 오니, 남편이 이제 일어난 듯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남편에게 물었다.
"몇 시까지 짐을 싸야 하지? 12시 30분까지 싸면 되나?"
"응 그 정도면 될 듯."
근력운동을 힘들게 하고 온 탓인지 온몸이 아파왔다.
"여보 근데 나 2kg 빠졌어. 내 의지로 살 뺀 거 대단하지?"
"응 대단하다. 난 의지박약이라 약물 아니면 안 돼."
1년간 위고비로 살을 뺀 남편은 뭐든 쉬운 길을 찾는 사람이다. 금연할 때도 병원에 가서 금연약과 금연패치로 성공을 했고, 다이어트도 위고비로 성공을 했다. 두통이 오면 진통제를 바로 먹는 사람이라 늘 상비약으로 진통제를 구비해 놓는다.
반면에 나는 생리통이 오면 일단 참고, 버텨본다. 진통제에 내성이 생기진 않을까?라는 걱정도 있고, 약을 먹는 게 그렇게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남편은 "아니 그럴 때 먹으라고 약이 있는데 왜 안 먹어?"라는 소리를 자주 하곤 한다. 이렇게 서로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 만나 결혼을 했다.
"아 11시 반까지만 쉬어야겠다. 여보 그때 짐 같이 싸자."
"짐싸개는 자기인데, 왜 같이 짐을 싸재?"
"아 맞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는 사람인지라 계속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다.
"어이~ 짐싸개. 빨리 짐 싸. 이러다가 늦어."
"오키 알았어."
여행 짐을 쌌다 풀었다 하는 것에 능숙한 나는 30분 만에 짐 싸기 미션을 클리어했다. 남편의 뜻대로 둘째 티커를 어린이집에서 하원한 뒤, 세차를 했다. 그렇게 여행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했다.
"역시 어디 여행 갈 때는 차가 깨끗한 채로 가는 게 기분이 좋아."
기분이 좋은 듯했다. 계획 담당인 남편은 뭐든지 척척 계획대로 하는 편이다. 본인은 즉흥적이라고 주장하지만, 결국 그 즉흥성 또한 계획이 어느 정도 세워진 상태에서 나온다.
남편은 산뜻한 기분으로 첫째 제리 유치원에 도착하자, 나에게 말했다.
"여보가 제리를 하원해 오면, 내가 티커랑 카페 가서 커피 두 잔을 뽑아올게."
"오케이."
우리의 계획은 착착 진행이 되었다. 모든 게 완벽했다.
남편은 커피를 뽑아서 차 위에 올려놓고, 트렁크를 열었다. 트렁크에 유치원 가방을 넣으려고 하는데, 트렁크 문이 열리며 차 위에 있던 커피가 쏟아져버렸다.
"으악!!"
커피는 거의 남은 게 없었고, 세차한 차는 다시 더러워졌다. 남편은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깊은 빡침이 느껴졌다.
"하......우리 세차 왜 했냐? 여보 나 커피 다시 뽑아올게."
남편은 커피로 오염된 차를 닦고, 커피를 다시 뽑아왔다.
완벽한 것 같으면서도 빈틈이 있는 사람인 듯.
시트콤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