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어쩌라고
숨이 턱 막히는 더운 여름날이었다. 끈적이는 공기 속에서 남편은 침대에 벌러덩 누워 천장을 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팥빙수 먹으러 갈까?"
너무나 달콤하고 완벽한 제안에 나는 생각할 틈도 없이 환하게 답했다. 마침 집근처에 옛날식으로 얼음을 갈아서 파는 팥빙수 집 '르방' 이 있었다.
"그래!"
내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남편은 순식간에 표정을 싹 바꾸더니 차가운 비수를 꽂았다.
" 자긴 먹을 생각밖에 안 하냐? 돼지야?"
" 아이 뭐야! 자기가 물어봐 놓고서 진짜!"
어이없어서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나를 향한 이런 공격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늘 당하면서도 신선함을 잃지 않는 남편의 순발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번에도 황당한 웃음과 함께 속으로는 '저 인간을 어떻게 해야하나' 잠시 고민했다.
내가 막 웃음을 멈추기도 전에, 남편은 다시 한 번 진지한 표정으로 두번째 질문을 던졌다.
"팥빙수집 말고 파리바게트 갈까?"
옛날 팥빙수를 먹고 싶었던 나에게 빵집은 매력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빵보다는 밥파였다.
"싫어!"
내가 단호하게 거절하자, 이번에도 역시나 남편의 공격이 되돌아왔다.
"싫다는 소리 좀 하지 마. 부정적인 여자야!"
"아니 어쩌라고! 어떻게 대답해도 당하네."
내 방어는 언제나 무력했다. "좋아"라고 대답하면 '돼지'가 되고, "싫어"라고 대답하면 '부정적인 여자'가 된다. 남편은 마치 대답의 여지가 없는 수학 문제를 던지고, 정답이 아닌 대답을 고를 때마다 나를 놀리는 악동 같았다.
나는 대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질문 자체로 나를 함정에 빠뜨리는 남편은 정말 순발력의 대가인 듯했다. 아마 나에게는 '놀리는 재미'와 '예측 불가능한 반응'을 끌어내는 데서 큰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리라.
남편의 이런 개그 트랩은 우리 관계의 일상적인 리듬이 되었다. 나는 늘 남편의 예상치 못한 공격에 웃고, 남편은 내가 웃는 모습에 자부심을 가지고 어깨를 으쓱거린다.
오늘도 나는 남편이 깔아놓은 개그 딜레마 속에서 유쾌한 패배를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