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의 달인
키즈카페에 와서 남편과 나란히 노트북을 폈다. 각자 일을 하는 이 평화로운 순간. 그런데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아도 아이들이 너무 잘 노는 것 아니겠는가?
이때를 위해 우리가 2년 터울로 아이를 낳고, 그 3년 동안 그 고생을 했지!
벅차오르는 뿌듯함에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의 고생이 드디어 빛을 발한다. 3년 동안 애 둘 키우느라 힘들었지만, 이제 둘이 같이 노니까 얼마나 좋아. 여보도 고생 많았어."
그러자 돌아온 남편의 명쾌한(?) 대답.
"고생은 내가 다했지. 자기가 뭘 한 게 있다고."
"읭?"
아, 농담이 지나치는구먼 그려. 허허허.
이 날의 대화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얼마 전 남편이 TV에서 이혼숙려캠프 프로그램을 보더니 나를 보며 진지하게 충고했다.
"여보, 당신이 결혼 전에 모아 온 돈은 다 생활비로 썼으니 그리 알아."
"뭔 소리야? 내 돈 다 어디 감?"
"내 돈은 다 집값으로 들어갔고, 자기 돈은 다 생활비로 써서 갈라서도 당신은 가지고 갈 게 없어."
남편은 능글맞게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나는 순식간에 동공 지진을 겪었다.
"하.. 내 돈은 왜 다 생활비로 썼지? 내 돈 하나도 없네. 빈털터리 되었네. 절대 이혼하면 안 되겠다!"
남편에게 가스라이팅은 이렇게 당하는 것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두 눈 뜨고도 다 털린다.
처음 글을 쓰면서 걱정했었다. '장난스런 결혼'에 대해 더 이상 글을 쓸거리가 없으면 어쩌지? 남편은 이제껏 많은 재미있는 말을 하고 살았지만, 앞으로는 재미가 없어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매일 새로운 놀림거리로 글을 쓸 소재를 한 바구니씩 제공해 주는 남편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남편에게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
"여보 적당히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