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잡을 수 없이 선을 넘은 남편의 개그 욕심
카페에서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는 평화로운 시간. 남편이 나를 툭 쳤다.
"어이~ 뚱녀, 자기가 가서 빵을 사 오면 어때?
위고비를 맞고 고도비만에서 일반비만이 된 남편이, 정상체중인 나에게 물었다. 나는 곧바로 반격했다.
"싫어. 어떻게 찐 살인데 , 그렇게 왔다 갔다 하면 칼로리 소모돼서 살 빠지잖아!"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수긍했다.
"아 그러네?"
그때를 놓치지 않고 경고했다.
"그리고 뚱녀라니! 나 그 정도는 아니야. 그리고 자기 말 함부로 하면 다 내가 글로 쓰는 거 알지? "
"사람들이 댓글 뭐라고 달아?"
"아 댓글이 많이 달리진 않아.(그 정도로 영향력이 있진 않고요. )"
더 뚱뚱한 사람이 덜 뚱뚱한 사람에게 '뚱녀'라고 하는 것도 코미디다.
남편이 처음부터 이렇게 나를 막 대했던 건 아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연애시절 그는 나를 엄청 소중히 대했다.
남편과 다시 만나고 두 번째 데이트 때였다. 차를 타고 강화도로 드라이브를 갔던 그날, 배려심이 넘치는 내가 차에 있는 쓰레기를 버려주려고 손을 내밀었다.
"이거 내가 차에서 내리면서 버릴게"
"아니야. 그런 건 내가 할게. 넌 쓰레기 같은 거 만지지 마. 손 더러워져."
그 말에 엄청 큰 감동을 느꼈다. 그 남자, 그때는 별것도 아닌 일에 감동하는 나를 보며
"뭘 그런 걸로 감동까지 하고 그래. 별것도 아닌데. "라고 했었다.
산 길 같은 위험한 길을 갈 때는 잠시 내 팔을 붙잡아 주다가도, 아직 사귀기 전이라 바로 손을 떼는 조심성까지 보였다. 나를 소중하게 대해주고 배려해 주는 그 모습이 정말 좋았다.
그런 그가 변하기 시작한 건, 나를 함부로 대할 때마다 내가 웃는 걸 보고 난 이후였다. 남편은 점점 과한 드립을 치기 시작했고, 걷잡을 수 없이 선을 넘어서 지금의 남편이 된 것이다.
결혼도 사실 개그욕심부리다가 정신 차려보니 식장에 들어가고 있었다.
나의 성장과정 속 비밀을 밝히자면, 아빠가 엄마를 그렇게 자주 놀렸다. 우리 엄마는 말실수 대장이었는데, 어느 날 우리에게
"얘들아~ 얼른 씻어. 싹싹싹 살살살."
이라고 했더니, 아빠가 그걸로 평생을 놀리셨다.
"아니 싹싹 씻으라는 거야? 살살 씻으라는 거야?"
하며 아빠는 그게 그렇게 웃기셨나 보다.
그러면 엄마는 "그만 좀 놀려라." 하며 진심으로 화를 낼 때까지 놀리셨다.
그 모습을 평생 보고 자란 탓인지 어디서 남편을 똑같은 사람으로 주워왔다. 보고 배운 게 이렇게 무섭다.
남편이 결정타를 날렸다.
"날 이렇게 만든 건 당신이야. 당신이 내가 말할 때마다 웃으니까. 웃기려고 더 심한 말을 하다가 항상 선을 넘지. "
맞는 말이다. 인정.
남편의 개그 욕심과 나의 조건반사적인 웃음이 합쳐져, 연애 시절 쓰레기도 못 만지게 하던 남자는 이제 나를 '뚱녀'라고 부르는 빌런이 되었다.
앞으로는 웃음을 참아봐야겠다. 그래야 내 손으로 만든 빌런을 진정시킬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