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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말고 놀아.

포기전문가, '정작가'를 꿈꾼다

by 알쏭달쏭
3시간 알바 vs 정규직의 딜레마


아이들 등원을 마치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뭐 해?"


"오~~! 그냥 있지."


엄마는 내가 오랜만에 전화하면 과한 리액션으로 반갑게 받아주고, 늘 "전화해 줘서 고마워."로 대화를 마무리하는 분이다.


"나는 지금 헬스장 가는 길이야."


"그래, 운동 열심히 해야 돼."


"요새 열심히 하고 있지. 운동 안 하면 무기력해져서 꼭 해야 돼."


무기력 탈출을 위한 필수루틴을 보고 엄마는 만족하셨는지, 곧바로 진로상담 모드에 돌입하셨다.


"그래, 잘하고 있다. 그렇게 운동하고 건강 챙기다가 애들 초등학교 들어가면 슬슬 2~3시간 알바라도 하면서 그렇게 지내면 돼."


"알바보다는 차라리 정규직이 낫지. 정규직은 애들 아플 때 휴가라도 쓸 수 있는데 알바는 대타가 없어서 갑자기 빠지기 힘들더라."


"그냥 눈치 보지 말고 빠지면 되지 않나?"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 매니저가 뭐라고 하면, 또 다니기 어렵고. 알바한다고 남편보고 휴가 내고 오라고 할 수도 없고 말이야. 며칠 전에도 제리가 새벽에 두 번이나 토해서 이불 빨래하고 잠 못 잔 거 생각하면... 쉽지 않아."


"그러게.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없으니 힘들구나. "


엄마는 내가 예전에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까?' 걱정했던 것을 기억하시고, 당신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싶으셨나 보다.


"그래도 3시간 정도 일하는 건 활력도 되고 좋은데. 일 안 하면 심심하잖아. 회사 나가면 여러 생각 안 하고 잊게 되고..."


"그럴 수 있긴 하지. 근데 나 요새 글 쓰고 있어서 별로 심심하진 않아. "


"그래 글도 쓰고 해라. "


이렇게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운동을 끝내고 집에 가니 남편이 침대에 누워있었다.


"어이 정 씨. 머 하고 와?"


"나 운동했지. 아 힘들다. 누워야겠다."


내가 옆에 벌러덩 눕자 남편이 한마디 했다.


"여보,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으니까 좋지?"


"응 너무 좋아. "


"아무것도 하지 말고 놀아. "


"오키 콜!!"


예전 같았으면 뭐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했던 내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괜찮다. 체력을 키우고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갖자. 평생 이런 시간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물론 잠시의 평화다. 곧 몸을 일으켜 노트북을 챙기고, 남편과 함께 밥을 먹은 뒤 카페로 향했다.








카페에서도 우리는 역시 따로 앉는다. 부부는 따로 앉기. 옆에 앉고 그러면 너무 친해 보여서 안 된다. 부부간의 거리두기 필수! (일명 '서로의 집중을 방해하지 않는 이상적인 평화 유지 거리'랄까.)


글을 쓰다가 문득 '잘할 수 없을 것 같아.'라는 마음이 들 땐, 이제 이렇게 대답한다.


'못하면 어때?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 잘할 때까지 하면 돼.'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면 나는 금세 힘이 빠져버리기 때문에 요즘은 '그냥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다.


'잘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요. 아무 생각도 없고요. AI 때문에 없어질 직업이 '작가'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냥 하는 겁니다요. 이것저것 따지다간 아무것도 못합니다. '



사실 내가 제일 잘하는 건 '포기'이다. 나는 포기 전문가! 용두사미형 인간이다. 거창하게 시작은 하지만 끝은 미약하다는 것이 사주에도 나와있을 정도이다. 하다가 하기 싫어지면 그냥 안 하는 게 나다.


그런 포기 전문가인 내가! 글을 쓰는 날은 11월 5일이고, 브런치에 첫 글을 발행한 날은 2025년 10월 22일이었으니, 벌써 2주간 지속하고 있다. 어제는 키즈카페에 가서도 남편과 같이 컴퓨터를 가지고 가서 글을 썼다. 원래 작심삼일인데 2주나 쓰고 있다니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기고 있다. 오? 나 좀 멋진데?


언젠가 '정작가'로 불리는 날이 오기를.


일단은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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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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