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대문자 T 인가 보다

너는 아빠를 많이 닮았구나

by 알쏭달쏭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하고 약을 먹었다. 나는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나른해졌고 느려졌다. 조급하고 눈치 보고 허둥지둥 대는 과거의 나는 없어졌다. 예민하던 반응은 둔해지고, 화가 치밀어 오르던 순간에도 한 박자 멈출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도 낯설 만큼 착해졌다.


'이게 원래의 나였을까? '


'병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던 걸까?'


그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첫째 제리였다. 제리는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 아파?"


"응. 아팠는데 치료받고 있어. 그래서 이제 화도 덜 내. 엄마 착해졌지?"


"웅. 착해졌어."


그 말에 웃음이 나면서도 가슴한쪽이 조금 아렸다. 아이에게 나는 '덜 착한 엄마'였다.


제리는 병에 유난히 예민하다. 코로나 시절에 태어나 마스크를 쓰고 어린이집을 다닌 세대다. 아픈 사람과 떨어져야 한다는 감각이 몸에 배어있다. 잠시 고민하던 제리가 다시 물었다.


"엄마, 그럼 엄마 병 혹시 옮아?"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순간 멈칫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감정은 옮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도, 짜증도, 우울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먼저 번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어쩌면 옮을 수도 있겠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제리는 조용히 내 옆에서 멀어졌다. 아마 호흡기로 옮는 병인 줄 알았나 보다.


"제리야 이건 숨 쉬어서 옮는 병은 아니야. 멀리 갈 필요 없어. 엄마 치료받고 있어서 이제 괜찮아."


그제야 제리는 안심하고, 다시 다가왔다. 사랑하는 엄마라도 '옮는 병'에 걸리면 얄짤없다. 내가 그렇게 가르쳐 놓은 결과라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하하하 고독하구먼.


나는 이제 이 병을 숨기지 않으려고 한다.
엄마도 아플 수 있고, 치료를 받으면 나아질 수 있다는 걸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다.

감정은 옮지만 회복도 옮는다는 걸.


엄마가 다시 차분해지는 모습을 보며 아이도 조금 더 안전해질 수 있다는 걸.


착해진 엄마가 원래의 나였는지, 약 덕분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지금의 나는 아이에게 덜 상처 주는 엄마라는 사실이다.

그거면, 지금은 충분하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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