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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an 책방 Mar 13. 2022

이진법과 양자 도약으로 바라보는 하루키 소설

1Q84 - 무라카미 하루키

 "1Q84년. 이 새로운 세계를 그렇게 부르기로 하자, 아오마메는 그렇게 정했다.


Q는 question mark의 Q다.  의문을 안고 있는 것.

 그녀는 걸으면서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좋든 싫든 나는 지금 이 '1Q84년'에 몸을 두고 있다.  내가 알고 있던 1984년은  이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은 1Q84년이다.  공기가 바뀌고 풍경이 변했다.  나는 이 물음표 딸린 세계의 존재양식에 되도록 빨리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숲에 내던져진 동물과 똑같다.  내 몸을 지키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이 장소의 룰을 한시라도 빨리 이해하고 거기에 맞춰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상실의 시대를 세 번째 읽은 것을 빼면 마지막으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은 것은 약 12년 전 해변의 카프카를 통해서였다.  직장생활 초기에 독신자 숙소, 서울-광주 간 버스 등에서 줄기차게 완독을 했던 책이다.  


스토리가 꽤나 재미있었던 책으로 기억한다.  흥미로운 것은 두 명의 전혀 다른 캐릭터를 갖고 있던 인물들의 생활이 시간이 지나면서 오버랩되는 방식으로 극의 전개를 극대화했다는 것이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하루키는 그의 초기 장단 편집에서는 사차원적인 사물의 이동으로 독자들의 생각을 압도해 버리는 방법도 많이 사용했다.  


예를 들어, 한 호텔에서 A가 B를 줄기차게 기다리고 있다고 치자.  한참의 시간이 지나자 A의 방문에 노크소리가 들린다.  A는 들뜬 마음으로 문을 활짝 연다.  양이 한 마리 있다.  정말로 당혹하지만, 이야기는 지독하게도 연결된다.  일종의 양자 도약(Quantum jump)인 것이다.

 


하루키는 앞서 설명한 두 가지 장치- 1) 이진법적인 스토리 전개, 2) 양자 도약 -를 1Q84에 동시에 적용하여 스토리의 전개를 극대화시킨다.  

 


첫 번째로 이진법인 스토리 전개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택시를 타고 꽉 막힌 고속도로로 접어든 아오마메는 약속시간에 쫓겨 택시에서 중간에 내린다.  고속도로였다.  생각지도 못한 탈출구를 통해 국도로 나가게 된다.  


그녀의 원래 직업은 트레이너이지만, 가정파괴를 야기하는 남자들을 가차 없이 살해하는 프로페셔널의 역할도 한다.  


이 글에서 아오마메는 매우 훈련이 잘된 암표범 같은 역할을 하면서도 많은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감정적으로는 그저 인간이고 사.고. 를 통해 그녀가 1Q84로 왔다는 것을 깨닫고, 사.고.를 통해 덴고의 딸을 수태하였다는 것을 깨우친다.  


반면 덴고는 후카에리가 초본을 쓴 '공기 번데기'라는 작품을 다듬어 책을 내는 소설가이자, 수학강사이다.  덴고는 후카에리 글을 다듬고, 교접을 하는 행위 등을 통해 리틀피플 세계와 연결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두 가지 스토리의 전개는 1Q84 3권에서 등장하는 우시카와를 통해 자연스레 연결이 된다.  결국 아오마메와 덴고는 서로의 존재를 느끼게 되고, 그들의 살고 있는 세계에 달이 두 개가 떠있음을 파악하게 된다.  아오마메에 의하면 그것은 일반적인 세계가 아닌 1큐84년인 것이다.  (큐는 일본어의 9와 같은 발음으로 일종의 언어 유희인 셈이다.)

 



두 번째 사용한 양자 도약의 이야기는 독자들의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아오마메는 대부호인 노부인에게 살인청부업자로 고용된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노부인은 학대받는 여성들을 위한 보호소를 세우고, 그곳에 있는 있는 억울함이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풀어주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자행한다.  일종의 남자에 대한 복수인 셈이다.  


그녀의 딸이 가정생활을 비관해 자살한 것이 그러한 생활의 시작점이 되었다.  노부인의 보호소에는 미소녀들이 매우 심하게 성폭행을 당한 경우가 있었다.  


배후에 '선구'라는 종교단체가 있음을 파악하고, 아오마메를 사주하여 '선구'의 리더 살해하게 된다.  이때 아오마메는 리더를 살해하면서 그가 이미 아오마메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 미소녀들은 그 '선구의 리더'에게 성폭행당한 것이 아니라, 자의적으로 도터를 잉태하기 위해서 교접했다는 내용 등을 듣게 된다.  혼돈이 시작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 때 정신적으로 교감이 있던 덴고를 죽이기 위해 과감히 리더를 죽인다.  이야기는 정말로 독자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3권을 쓰면서 굉장히 많은 창의적 고통을 느꼈을 것 같다.   2권에서 사건의 규모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그것을 마무리하기 위한 열쇠가 몇 개 필요해 보였다.  


이미 2권에서 '공기 번데기'와 리틀피플이 나타났고, 아오마메의 철학도 '선구'의 리더에 의해 충분히 흔들리게 되었다.  그러면서 하루키가 사용한 열쇠는 우시카와라는 인물과,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음악, NHK 수금원 역할을 하던 아버지의 죽음 등이다.  여러 가지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아오마메는 덴고의 아이를 갖게 되고, 처음 그녀가 들어왔던 고속도로상의 비상탈출구를 역으로 찾아가서 결국 1984년으로 돌아가게 된다.

 

 

 



사실 3권의 마지막까지 스토리 전개는 뜨겁지만 마침표는 급하게 문 닫은 동네 칼국수 집과 같은 느낌을 짓게 한다.  이미 열린 판도라의 상자를 닫기 위해 하루키 선생이 좀 더 논리적으로 접근했다면 더욱 멋진 글이 될 뻔했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이진법적 이야기 전개, 양자 도약이라는 용어가 문학에서 사용되는지 모르겠으나, 머릿속에서 떠도는 관념을 표현하기에 적당한 것 같아서 선택한 어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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