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어머니께도 돌아가신 ‘엄마’가 필요한 모양이다
어제부터 세찬 바람을 동반한 가을비가 내린다. 나무가 휘청거릴 정도로 바람이 불자, 그 결에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낙엽 때문인지 거리가 온통 가을로 꽉 찬 느낌이다.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오니 몸이 으슬으슬 춥고 떨린다. 갑자기 뜨거운 국물이 먹고 싶어 냉장고 속 음식 재료를 살펴본다. 냉동실에 얼려 둔 새알이 눈에 띄어 미역국을 끓이기로 마음을 정한다. 황태채와 불린 미역을 참기름에 볶는다. 물을 부어 한참을 뭉근하게 끓이면서 찹쌀로 빚은 새알과 들깨가루를 넉넉하게 넣는다. 나는 새알이 퍼지는 것을 선호하지 않기에 쫀득해졌다 싶을 때를 기다렸다가 가스레인지 불을 끈다.
알맞게 끓여진 국을 대접 한가득 담아낸다. 그런 뒤에 한 숟가락 떠서 입안에 넣는다. 맛을 음미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친정어머니가 알려주신 대로 끓여보아도 매번 친정에서 먹던 그 진한 국물 맛은 아닌 것 같아, 왠지 야속하다.
친정어머니는 내가 감기에 걸리면 ‘찹쌀새알미역국’을 끓여주셨다. 국에 밥을 말아 한 그릇 먹고 나면 온몸이 땀에 젖었다. 그러면 감기약을 먹지 않아도 몸이 낫는 것 같았다. 자식에 대한 사랑과 근심이 버무려져 음식에 담겼기 때문이리라.
나는 아직도 몸이 아프거나 입맛이 없을 때면 ‘엄마표’ 음식이 생각난다. 대학을 졸업한 큰아들이 있는 데도, 내 나이에 상관없이 친정어머니가 그리워진다. 엄마, 하고 나지막하게 불러보면 결혼 전의 내가 떠오르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러면서 위로가 된다.
지난여름,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서문시장에 갔다. 나는 요즘 대형마트에 가면 온갖 생필품과 음식 재료가 많아 재래시장을 찾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래서인지 모처럼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르면서 장터를 구경하는 재미가 솔솔 했다. 내 학창 시절까지만 해도 동네 골목시장이 아닌 서문시장 정도의 큰 시장에 가야, 시간가는 줄 모르고 구경할 수 있었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이렇게나 빨리 흘렀다니, 새삼스러웠다.
볼일을 마치고 나니, 점심시간이었다. 보리밥집으로 가서 등받이 없는 긴 벤치 모양의 의자에 앉았다. 자리가 나면 순서대로 앉아야 할 만큼 인기가 많은 곳이었다. 메뉴를 보던 친정어머니께서 새알미역국을 주문하셨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면서 친정어머니는
“너희 외할머니는 내가 기운이 없으면 찹쌀새알미역국을 끓여주셨는데.”
라고 말씀 끝을 흐리셨다.
그 순간 내 가슴에 찌르르 전율이 흐르며 아렸다. 살면서 생활에 지치거나 힘이 드는 순간이면 나만 엄마가 필요한줄 알았다. 그런데 팔순을 앞두고 있는 친정어머니께도 돌아가신 ‘엄마’가 필요한 모양이다. 엄마라는 낱말이 갖고 있는 대단한 힘인 것 같다. 실존하지 않는 분이라도 호명하자마자. 당신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온몸의 감각 세포를 일깨우는 것임에랴.
예전에 친정어머니가 내 외할머니를 찾아뵈러 갈 때면 손수 미역국을 끓여주셨다고 했다. 국물에 들깨가루를 듬뿍 넣어 주셨다던 외할머니 손맛의 미역국! 첫아이를 유산하고 몸조리를 제대로 못한 채 일상 생활해야 했던 나의 어머니를 한평생 가엽게 여기셨던 외할머니셨다. 친정어머니가 몸져누울 때마다
“그때 미역국 한 그릇 제대로 못 먹어서 그렇제.”
라고 안타까워하셨다. 그러면서 찹쌀이 들어간 음식을 먹고 나면 근기가 있어 속이 든든하다고, 일부러 찹쌀로 새알을 빚어 미역국을 끓여주셨단다.
그래서인가. 친정어머니는 내가 삼 남매를 출산할 때마다 미역국은 잘 챙겨 먹었는지부터 물어보셨다. 외할머니와 친정어머니 그리고 나에게로 이어지는, 건강을 챙기라는 당부의 말씀이었다. 아프고 기운이 없을수록 끼니를 든든하게 챙겨먹어야 한다는, 당신들이 체득한 금언 속에는 찹쌀새알미역국이 포함된다. 그것은 우리 집에서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세대 간의 사랑을 표현하는 매개체다.
나는 찹쌀새알미역국을 먹을 때면 그분들의 사랑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