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지난 연애 글시리즈-1

by 경진

S대 오케스트라 동아리에서 만났던 은 당시 나의 이상형관에 꽤 잘 들어맞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을 본 나의 첫인상은


UDT 나온 것처럼 생겼다.


세미 정장과 제복이 잘 어울리고, 진지한 표정이 디폴트에, 사회생활 에티튜드가 몸에 밴 사람이었다. 그 사람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건, 바람 부는 날 공연할 때 악보가 뒤집히지 않도록 클립을 사다 주는 센스나 뒤풀이에서 솔선수범해서 고기를 굽는다던지, 대화를 할 때에도 적당히 치고 빠지는 눈치 등이었다. 이후 저녁 연습 때 휴대폰을 잃어버린 나를 위해 O에서 이른 아침부터 학교로 와 휴대폰을 찾아주고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나는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 걸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마음을 일찍이 알아챘지만 그에 대한 나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다음 약속이, 그다음 약속이 잡히는 건 아마 우리 두 사람 마음이 같았기 때문에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저녁과 밤 사이 함께 걷는 날이 하나둘씩 늘어났고, 어느새 나는 내 옆을 걷는 그 남자를 의식하게 되었다. 나의 말을 집중해서 들어주는 그가 좋았고 이런 사람과 한 번 만나보면 좋겠다는 마음을 알아차린 후 고백을 이끌어내어 사귀게 되었다.


그와 좋았던 시간은 딱 백일이었다. 백일이 지난 후 거짓말같이 그의 단점이 크게 보이기 시작하고 그와 사귀면 안 되는 영문만 마구 떠올랐다. 처음에는 깔끔하게 생겨서 좋았던 겉모습이 그때부터는 왠지 학창 시절에 담배를 피우면서 날라리들과 어울렸을 것 같은 인상으로 느껴져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다른 친구들을 괴롭힌 적은 없다고 힘주어 말했지만 이미 서서히 마음이 식기 시작하자 어떤 말도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백일이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둘 사이를 갈라놓을 운명의 장난 같은 일들이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었다.




그날 저녁 김 손을 잡고 거리를 걸으며 인터넷으로 검색한 식당을 찾고 있었다. 우연찮게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고 막상 아는 체를 하려니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그대로 지나쳐버렸다.


-인사를 안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먼저 말을 건네지 못했다는 나의 말에 오는 길 내내 길을 찾는 둥 마는 둥 어물쩡대던 김의 첫마디였다.


-전에 말했던 그 사람 있잖아.


곧이은 의 침묵은 조금 전에 지나쳤던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가던 길을 우뚝 멈추어 의 말을 알아들으려 애써보았다.


김의 첫 여자친구가 내가 아는 사람이라니. 그것도 작년 오케스트라 연주를 같이 했던 동아리 사람이라니, 그리고 내가 그 사람이 김에게 했던 꺼림칙한 과거를 알고 있다니.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정말 같은 사람이 맞나, 아니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드라마에서는 힘들 때 술을 마시던데, 나도 그렇게 해봐야겠다.


술은 쓰기만 할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아무렇게나 들어간 카페에서 의 과거 X의 이야기를 꺼내며 나와 헤어질 게 두려웠지만 숨기고 싶지 않았다며 울먹이는 의 등을 쓸어내려주었다. 그리고 당시 내가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었는지 곧 까먹어버렸다.


스킨십 사건 이후로는 줄곧 지지부진한 연애가 이어졌고 크고 작은 사건들을 거쳐가며 점점 지쳐갔다. 이 연애가 서로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먼저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기가 몹시 어려웠다. 하지만 결국 더 이상 만나기 힘들 것 같다는 의사표시를 하고 이별을 맞았다. 그렇게 피하고 싶었던 걸 보니 이렇게 힘들 거라는 걸 가늠하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저 무기력하고 우울하기만 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이별 노래 가사처럼 그저 매일 울기만 하는 게 이별인 줄 알았던 나는 그게 이별의 여파라는 걸 도무지 깨달을 재간이 없었다. 『헤어질 결심』 속 슬픔이 잔잔한 파도처럼 밀려온다는 사람이 바로 나였던 것이다.


[지난 연애] 글 시리즈

만남-헤어질 결심-지난 연애를 바라보는 백 가지 관점

작가의 이전글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