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 여기 병원이에요.
아버지는 올해 88세.
불과 6개월 전까지만 해도 네발 전동차를 타고 다니시며 하우스 농사에 참견도 하시고 치매이신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주시던 분이셨는데 갑자기 음식물 삼킴을 힘들어하셔서 병원을 모시고 갔는데 폐 쪽에 종양이 보인다는 소견을 듣게 되었다.
우선 입원해서 염증을 잡고 조직검사등을 하기로 하였지만 간호통합병동 입원 첫날부터 섬망증상이 심하게 나타나셨다. 그래도 치료는 해야 하기에 3일을 버텼지만 아버지는 점점 헐크가 되어가고 있었다. 언니들과 상의 끝에 치료를 중단하기로 하였다. 혹여 악성종양이라고 하여도 치료로 힘들게 하는 것보다 집에서 하루라도 편히 있게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퇴원 후 아버지는 헐크에서 순한 양이 되었다. 집이 주는 익숙함과 편안함 때문일까? 아님 엄마 때문일까? 퇴원 후 더 자주 부모님을 찾아뵙고 자매들은 더 자주 모이게 되었지만 아버지의 한번 떨어진 기력은 좀처럼 회복이 쉽지 않았다. 그렇게 3개월. 며칠 부척 힘들어하는 아버지가 이상해 큰언니랑 다시 병원에 모시고 갔는데 폐에 물이 가득 차 있어 물을 빼내는 시술을 받으셔야 해서 급하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입원에 필요한 짐을 챙기러 집에 갔더니 엄마가 반기셨다. 그래도 아버지의 부재이유에 대해서는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
"엄마, 아버지가 아파서 병원에서 수술받고 올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는
"어디가 아퍼? 폐? 수술해야 한데? 아이고 "
속상해하셨다. 또 식탁에 앉아짐 챙기는 나를 보시고는 "너 병원갈거여? 그럼 엄마도 델꼬가"하시며 현관에 나서신다. 엄마야...
"엄마 아부지 금방 오실 거고 둘째 언니 올 거니까 집에 계셔요" 안심을 시켜드렸다.
아버지 첫날 간병은 큰언니.
집에 계신 엄마의 저녁은 셋째 언니.
엄마의 간병은 둘째 언니.
딸들이라도 많아서 다행이다. 낮에 그렇게 아버지 걱정을 하시며 병원까지 오려했던 엄마는 새벽에 일어나 언니한테 아버지 어디 가셨다고 물으셨단다. 그래 엄마라도 아버지 걱정을 잊고 지내시는 게 낫지 않나 싶다.
언니들과 상의 끝에 엄마는 아버지 치료받으시는 동안 요양병원에 잠시 모시기로 하였다. 하루 3시간 요양보호사님이 오시지만 나머지 시간에 돌봐줄 사람이 없어 맘이 아프지만 단기니까. 우선 아버지의 치료에 집중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둘째 날 아버지 간병은 내가 하기로 하였다. 오후에 폐에 물을 빼는 시술이 예정되어 있어 검사 전 채혈등 간호사들이 바빴다. 아버지는 혈관도 안 보이고 해서 주사를 10번 이상 찔러서 어렵게 채혈을 했다. 잠시 회사에 일이 생겨 다녀와야 하는데 감사하게 둘째 형부가 잠시 교대해 주셔서 일을 볼 수 있었다.
아버지는 자꾸 집에 가자고 하셨다. 대화는 안되시고 호흡 때문에 끼워놓은 산소호흡기도 자꾸 빼셨다. 아버지가 아파서 치료받으러 왔다고 해도 대답은 하시지만 얼른 집에 가자고만 하셨다. 얼굴에는 화가 가득이셨다. 손에는 안되어서 발에 놓은 링거주사를 어느샌가 주삿바늘 뽑아서 링거액이 줄줄 시트랑 이불을 모두 적셨다. 어젯밤에도 한숨도 못 주무셨다고 했는데 오늘도 마찬가지로 안 주무시고 계속 화만 내고 계셨다. 침대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려 하시고, 못하게 하면 발로 차며 심하게 거부하시는 상황이었다.
폐에 물을 빼는 시술을 해놓은 상태여서 혹여라도 이 장치를 빼면 안 되어서 특단의 조치로 아버지의 팔을 침대에 결박하였다. 마음이 아프지만 갑자기 헐크가 되어버린 아버지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결박으로 한숨을 돌린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이제 팔을 풀라고 소리를 지르셨다. 아무리 설명을 드려도 소용이 없었다. 새벽까지 계속되는 아버지의 고성에 넋이 나갔었는데 간호사께서 아버지의 침대를 간호사실로 옮기자고 하셨다.
다른 환자들도 있고 해서 요주의 환자들은 간호사실 옆에서 특별 관리를 하는 듯싶었다.
하루 간병에 넋다운이다, 딸들이 돌아가며 간병하자던 처음 계획은 간병인을 구하자로 변경되었다. 예전에 돈으로 하는 효도가 가장 편하다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다행히 전문 간병인을 구하게 돼서 한시름을 놓게 되었다. 부모님 옆에서 늘 챙기는 자녀들 정말 상 줘야 한다. 다음날 부모님 집에 들를있이 있어 가봤더니 깔끔쟁이 둘째 언니가 부모님 쓰시던 이불빨래도 다 해놓으셨고 집도 깔끔하게 치워놓으셨다. 오! 역쉬!!
다들 본인의 달란트대로 알아서 챙겨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앞으로 많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 언니들 우리 힘내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