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엄마김치
80 평생 농사꾼으로 살아오신 아버지에게 땅이란 곧 자신이고 그 땅에는 늘 농작물이 자라고 있어야 했다. 거리가 먼 논농사는 농사를 지어주시는 분이 계셨지만 집 근처 밭농사는 그동안에는 농기계를 다룰 줄 아는 작은오빠의 도움으로 하우스를 지어 농작물을 키우고 계셨었다. 가끔 우리들은 아버지의 도움요청이 있을 때만 도왔었다.
아버지가 하우스 농사걱정을 하셨을 때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겁이 나는 거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매주 우리들의 주말농장은 시작되었다.
감자도 심고
마늘도 심고
상추 아욱 열무 비트 의욕에 앞서 여러 가지 늘 심었다. 판매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가 애달파하시니 하는 농사다. 영농반장 격인 셋째 언니가 미리 일정을 알려주면 시간 되는 사람들은 참석.
일하다가 새참시간이 되면 다들 가방에서 먹거리를 꺼낸다. 언니니까 동생이니까 챙기는 거다.
오빠들도 함께하면 부모님은 얼마나 행복해하실까? 가끔씩 생각해 본다.
시골인심이 후하다.
상추든 아욱이든 풀만큼이나 쑥쑥 자란다. 때를 지나면 꽃이 피거나 질겨져서 못 먹는 게 농작물이라 수확을 해서 우리도 먹지만 주변분들에게 나눔도 많이 하고 우리 자매들은 김치대장이 되어갔다.
열무가 많으면 열무김치를 담고
한여름에 얼갈이배추가 풍년이라 여름김장을 하기도 했다
쌓여가는 각종 김치에 둘째 언니는 김치냉장고를 하나 더 장만하셨다. 딸들이 모여 김치 담고 맛난 거 해 먹고 하는 모습에 우리 엄마는 연신 돌아다니시며 좋아하신다. 자식들이 좋으신 거다.
울 엄마는 치매이시다. 알콜성치매
농사의 고단함을 몰래몰래 술 한잔으로 삭히셨는지
하루에 소주 한 병은 너끈히 드신다. 딸들이 술을 안 먹는 거는 아시는지 사위들이라도 오면
"자네 술 한잔 해야지"
술 먹을 핑계를 만드신다. 사위들이 안 먹는다고 해도 벌써 당신은 소주잔에 소주를 따르고 계신다. 말려도 보고 했는데 가족회의 끝에 그냥 드시게 하자고 했다. 술주정하시는 것도 아니고
식사하시면서 한잔 기분 좋게 마시시는 거라 말릴 수가 없었다.
술 마시는 사위는 기가 막히게 아시니 그나마 다행이시다.
엄마는 김치장인이시다.
김치를 뚝딱뚝딱 쉽게 쉽게 잘 담으셨다.
매번 전화하셔서 김치 가져가라고 하셨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딸들 김치가 맛나다고 하신다.
가을쯤이었을 거다.
엄마는 밭에 잘 가지 않으시는데 아버지가 모시고 가셨었나 보다. 김장하려고 키우는 배추랑 무를
엄마가 잔뜩 뜯어오셨단다.
큰언니가 왜 뜯어왔냐고 하니까
김치 담아야 한다고 하셨단다. 엄마몸이 기억하는가 보다.
"내 새끼들 김치 담아줘야지"
"엄마. 이제 우리가 엄마김치 담아드릴게요"
증여 이후 우리 자매들은 부모님과의 일상이 처음에는 의무감이었다면 지금은 일상이 되었다.
부모님 살아계시는 동안에 주말농장은 계속될 것 같다.
이런 평온함이 계속되기를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