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졸이며 바라보는 우리의 토끼

존 업다이크의 『달려라, 토끼』를 읽고

by 램즈이어

그는 달린다. 아, 달린다. 달린다.


이 마지막 문장에서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떠올랐다. 줄거리 방향은 영 다르지만 Run Forest Run의 대사가 나오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가 『Rabbit, Run』에서 영감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영화에서는 포레스트를 따라 줄줄이 많은 사람들이 따라 달린다. 달리기는 전염성과 중독성이 강한 모양이다. 슬그머니 이 책을 한국의 20 30 들에게는 숨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면이 단단하지 못한 젊은 가장이 사춘기를 하는 이야기 인거 같아서…. 가뜩이나 결혼을 겁내하며 싱글족으로 살고 싶은 젊은이가 있다면 이 책은 건너 뛰어 주옵소서.


I 1960년대 미국 서민 생활 vs 2023년의 한국


1960년대 미국 서민 생활이 2023년의 한국과 유사성이 많은 것에 놀라고, 아름다운 문체에 매료되며 읽었다.

도입 부분에서 집 나간 주인공이 계속해서 자신을 추적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의식하는 장면이 나오길래 무슨 범죄 소설인가 했다. 이런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처음으로 해리는 자신이 범죄자임을 깨닫는다. 크게 한 걸음 내디뎠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p43, 73)

나중에 보니 심난한 자신의 가정에서 도망 나온 것이고 중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차를 타고 달아났는데, 래빗은 차가 원래 처가(妻家) 소유임을 깨닫고 다시 돌려준다.

도주 후 만난 여인과 성관계를 나누는 장면의 사실적인 묘사는 잘 이해가 안 되기도 하고 낯이 붉어지기도 하고 마음이 찡하기도 했다. 마음 불편한 장면만 나오나 했는데, 답답한 회색 톤이 갑자기 초록으로 바뀐다.

스미스 부인 정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대목에서다. 양귀비, 스위트피, 피튜니아 등 꽃씨 뿌리는 이야기가 한참 펼쳐진다. 서울의 아파트에서 가장 흔한 꽃 철쭉이 그 정원의 주인공인데, 철쭉은 래빗(주인공 해리의 별명)이 소년시절 사귀어보고 싶었던 소녀로 비유되었다.


해와 달 해와 달 시간이 간다. 스미스 부인의 땅에서 크로커스가 땅껍질을 부수고 나온다. 수선화가 나팔을 푼다. (P194)

가난한 소녀들이 부활절에 교회에 쓰고 가는 모자를 닮은 느낌이다. 해리는 자주 그런 소녀를 원했지만 한 번도 사귀지는 못했다.(p197) 순수한 분홍색 옷을 입은 자그마한 철쭉 “비앙키”


본디 심성이 순전한 래빗은 태어나는 아기에 대한 경외감에 돌연 집으로 돌아가고 둘째가 태어나면서 반전이 있다. (나중에 또 반전이 생기지만) 갑자기 앞부분과 와 잘 어울리지 않은 장면이 펼쳐진다. 행복감을 느끼고 반듯한 남편으로 돌아오고 (집안 청소도 열심히 하고, 교회도 가고) 장모와 친해지며 어머니와 소원해지는.

언젠가 글쓰기 선생님으로부터 소설 주인공은 어떤 면에서건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소설 『이방인』을 읽을 때 주인공 뫼르소가 뭔가 매력적이어서 저자 까뮈가 멋있는 것인지 뫼르소가 멋있는 것인지 헷갈렸다. 래빗도 뫼르소 못지않게 끌리는 구석이 많다. 뫼르소보다는 덜 반항적이고 덜 비사회적이면서 낯이 익은 이 시대의 부조리를 안고 있어서인지.

래빗은 선수시절 파울을 절대 안 했다. 루스와 한밤을 보내고 블라인드 사이로 교회를 바라보며, 자기도 모르게 기도하는 독백(獨白)에서 그의 진솔함이 엿보인다.


도와주소서. 그리스도여. 저를 용서하소서. 길을 인도해 주소서. 루스, 재니스, 넬슨, 어머니와 아버지, 스프링어 부부, 그리고 태어나지 않은 아기를 축복하소서. 토세로와 다른 모든 사람을 용서하소서. 아멘.


에클스 목사가 그려본 4년 전 해리의 모습에서 그의 외모를 알 수 있다.


금발에 키가 크고 학창 시절에는 이름을 날렸던 상당히 영리한 청년. 아침의 아들이다. 특히 그의 자신만만한 태도가 틀림없이 재니스의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p217)


뫼르소 못지않게 실존적이다.


“재니스를 떠날 때 나는 흥미로운 발견을 했어.”

“내가 나 자신이 될 배짱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대신 대가를 치러 준다는 거야.” (p214)


저자 업다이크는 농구에 대해서는 거의 선수급이고 골프 애호가일 것이다. 곳곳에 농구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등장하고, 주인공이 혼란에 빠질 때 종종 농구 경기 중의 딜레마와 비유된다. 1960년대에 이미 골프가 대중화되었나 보다. 퍼블릭 골프장에서 라운딩 하는 장면에서 아이언, 우드 등의 골프채를 부인(재니스), 애인(루스)으로, 덤블은 어머니로 비유하는 독백이 재미있다.

후반에 전체적인 줄거리를 요약하고 있는 부분이 나온다.


그가 재니스에게 미치도록 화가 났던 것은 그 닫힌 느낌, 갇혀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는 교회에 가서 작은 불꽃을 가져왔지만 집안의 어둡고 눅눅한 벽에는 그것을 둘 곳이 없었다. 그래서 불꽃은 깜박거리다 꺼지고 말았다. (p385)


"내가 그 애를 죽인 게 아냐."라고 외친 후 장례식 도중에 달아날 때는 기쁨에 젖어 비탈을 달려 올라간다. (자신이 아기를 죽였다는 내면의 다른 목소리를 부수고, 출구를 찾을 것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마지막에는 루스에게 마저 버림받고, 자책감 책임감이 뒤엉키며 두려움으로 달아나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가엾은 래빗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혔다. 끝부분의 모호한 기술 때문에 (에클즈 목사가 루스에게 전화해서 래빗이 아이를 죽인 거라고 했다는 등) 나중에 사람들이 래빗을 아이 살해범으로 몰고 가지 않을까?『이방인』의 뫼르소처럼 래빗도 법정에 서는 게 아닌가? 이 여린 심성의 사나이가 또 딱 부러진 진술을 못해서 중형을 선고받지 않을까 등등을 상상하며.


II 놀라운 글쓰기 교사


의식의 흐름을 좇아가는 독백이 많고 심리 묘사가 무척 세밀하다. 대단히 영리하고 재치 있는 비유에 감탄하며 ‘누가 하바드에서 일등 한 사람(존 업다이크) 아니랄까 봐’하며 읽어 나갔는데, 클럽 장면에서 밤거리 여성 마가릿의 대화에 비슷한 문장이 등장하다. (좀 다른 맥락이지만)


“솔직히, 로니, 가끔 너 하는 말을 들으면 꼭 하버드 나온 사람 같아.”


현실세계에서 비현실로, 현재에서 과거로 넘어갈 때 글쓰기 기법을 배울 수 있는 대목들이 있다. 꿈에서 현실로 넘어갈 때 비슷한 단어를 연결하여 옮아가는 방식이랄지. (p 129, p136)

사물을 묘사할 때 의인화 하고 등장인물의 성품과 연결시킨다.


재니스의 핫도그는 늘 고문을 당한 듯 찢어지고 뒤틀린 모습으로 식탁에 나왔다.


한국 멜로드라마에서 나올법한 상큼한 대화들이 있다. 루스와 래빗의 말다툼 중에서.


“너는 나쁜 소식 같은 사람이야.”

“나도 어쩔 수가 없어. 너는 너무 좋은 소식이거든.”

“어머나. 정말로 말 만하면 원하는 걸 다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너를 가졌지.” “너하고 해하고 별을 가졌어.” (p194)


슬픔에 대한 표현도 대단하다.


집에 슬픔이 우거져 아이를 위협하는 듯하다. 아이의 몸도 힘차게 꿈틀거리며 슬픔을 위협한다. 아이가 슬픔을 쓰러뜨려 집 전체를 무너뜨릴 것만 같다. (p387)


업다이크는 래빗을 탄생시키며 심리학자의 역량을 가진 놀라운 시인이자 작가임을 드러냈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공간,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종교와 계급을 체현한 인물을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미국의 축도를 그려냈다고 한다. 대단한 경험이나 여행을 못 했다고 글쓰기가 위축될 필요는 없나 보다. 그는 주 6일, 아침에 몇 시간씩 글 쓰는 습관을 평생 유지했다고 한다. 스티븐 킹 포함 많은 글쓰기 교사들이 똑 같은 조언을 하는데….

나는 과연 언젠쯤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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