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의 『월든』을 읽고
‘월든 호숫가에서 2년 살기’ 후에 소로가 그려낸 사색과 관찰에는 기대치 않은 내용도 있었다.
지상의 위대함을 추구하느라 천상의 모든 즐거움은 공중으로 사라진다.
집이 생기면 집 때문에 더 부유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가난해질 수 있다.
그를 소유한 것이 바로 그 집이니 (『월든』에서)
첫 장의 경제학을 읽고 서울의 부동산 문제로 번뇌하던 마음이 평정을 얻기도 하고. 철학자에게 이른바 모든 ‘뉴스’는 잡담이라는 구절에서는 뉴스를 멀리하고픈 내게 동류의식도 주었다.
인터넷에서 월든 호수를 다녀온 사람들 이야기를 읽어보니 실망했다거나 평범했다는 내용이 많았다. 책에서 월든 호수가 그토록 찬란하고 풍요로운 것은 소로의 깊은 인문학적 지성과 사랑이 빚어냈기 때문이었나 보다. 가난한 화가 고흐 주변의 평범한 사람과 카페가 그의 그림에서 예사롭지 않은 주인공으로 재탄생한 것처럼. -----------------------------------------------------------------------------
「언젠가」
미국 동부의 월든 호숫가에 갈 수 있다면.
바람의 소리를 들으려고, 새가 둥지를 짓듯 지었다는 그 집에 며칠 묵어보리라.
눈보라와 폭풍우의 검사관이 되어 뚝딱뚝딱 널빤지로 지었다는 오두막집에.
해와 달이 집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니 조금은 으스스하겠지.
소박한 벽난로 앞에 서면, 송진 가득한 소나무 그루터기가 빨갛게 피어오를 때
소로가 읊던 시구가 생각날 것이다.
가벼운 날개를 단 연기는 위로 날아오르며
자신의 날개를 녹이는 이카로스의 새, 노래 없는 종달새이자 새벽의 전령
마당의 떡쑥, 미역취, 모래벚나무 아래로 붉은 다람쥐는 아직도 노닐고 있을지?
얼른 숲으로 달려가보자.
마을 사람들에게는 결코 불러 주지 않던 숲 속 가수들의 세레나데가 들릴지 모른다.
숲지빠귀, 멧종다리, 붉은 풍금조의 화음이.
숲 속에서 가만히 그들의 상냥한 교제, 순수하고 용기를 주는 사귐을 기대해 보리라.
산토끼, 물수리, 밍크를 만나며 산다람쥐, 여우와 춤을 추는.
자고새 어미가 현란하게 유혹할 때 (넘어가는 척하고)
둘레에서 비밀히 움직이는 새끼 무리를 찾아 내봐야지.
동양의 열렬 팬을 맞아 소로의 특별 지시가 있을지 모른다.
월든 호수와 화이트 호수가 한낮의 태양과 모의해서
빅토리아 여왕의 백 캐럿 다이아보다 몇 배 푸른 보석을 선사한달지.
월든 호수의 홍채가 반짝이면 그 안에서 소로의 눈빛을 볼 것만 같다.
창공에선 우아한 매가 - 무지개와 석양과 아지랑이로 짜인 둥지에서 태어났다는 -
영묘한 비행쇼를 보여 주고
뗏목에선 수많은 농어 떼가 호위를 해줄 것이다.
물새 아비와 한바탕 잠수 게임도 해보자. 킬킬거리는 야릇한 웃음소리가 들릴 때까지.
그토록 아름다운 물새가 참으로 괴이하게도 그토록 괴이한 목소리를 가졌다니.
콩밭이 있었던 이랑에 서면 소로의 오라트리오가 들려오지 않을까?
돌에 부딪혀 쨍그렁거리는 그의 괭이 소리에
하늘과 숲이 메아리치고,
그 리듬에 맞춰 개구쟁이 쏙독새들이 맴맴 돌던
그곳에선 슬픔이 두렵지 않으리.
만약 당신이 정당한 이유로 슬퍼하는 일이 생긴다면, 모든 자연이 영향을 받아 태양은 광채를 잃고, 바람은 친절하게 탄식하고, 구름은 눈물로 비를 내리고, 숲은 잎을 떨어뜨리고 한여름에도 상복을 입을 것입니다.
태양이 기울면
해가 들지 않은 늪지와 황혼 녘 숲에서 올빼미가 삭막히 울부짖겠지.
황소개구리는 진지하게 나팔을 불고, 밤이 깊어지면 부엉이 등장!
여자 목소리로 애도하는 묘지의 민요는 과연 어떤 소리일까?
이른 기상을 위해 야생수탉의 울음도 기다려봐야지.
‘이 녀석 목소리에 누가 일찍 일어나지 않겠는가?’라고 했으니.
밤중 내내 비밀 집회를 마친 안개가
숲으로 물러가고,
이슬이 아직 나무에 매달려 있을 때
밤안개 옷을 벗어던지는 호수처럼
어떤 이가 아침 목욕을 하고 있다면
“날로 새롭게 하며, 나날이 새롭게 하고, 날마다 새롭게 하라.”라고
작게 읊조리는 이가 그 옛적의 주인이라면
새벽에 못 일어나는 내가
아직 꿈속에 있음이 분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그를 다정스레 감싸는 어느 미녀의 모습도 보인다.
연한 색 장미를 한 다발 안고
분홍색 뺨을 한 저 그리스 여인은?
깜짝할 새 둘은 사라져 버리고
잔물결 위 어치 깃털만 가벼이 흔들리네.
아, 새벽의 여신 오로라여
내게도
아침의 비밀을 알려주오.
나는 소로의 아침을, 월든 호숫가의 아침을 생각하다가 서울의 어리 버드들이 달리고 있을 한강변의 아침을 생각한다. 나의 보잘것없는 아침도 생각하다가, 다시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
매일 아침은 내 삶을 자연 그 자체와 똑같이 소박하고 순수하게 살라는 경쾌한 초대였다.
내 만병통치약인 희석되지 않은 아침 공기 한 모금을 마시라.
과연 내 아침은 언제쯤 깨어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