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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즈이어 Jul 17. 2023

매미(전편)

픽션

 1. 사랑에 이유가 없듯이


 내 이름은 참맴, 자세히 말하자면 2022년 7월 17일생, 수명산아파트 우두머리 수컷 참매미다. 태어나 보니 참매미였고 수놈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우두머리가 된 것은 험난한 테스트를 거치고 나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모두들 거뜬히 해내는 허물 벗기가 내게는 쉽지 않았다. 형제들의 응원으로 간신히 날개돋이 하고 나온 내 모습이 하도 심난해서 매미 구실을 잘할 성싶지 않았나 보다. 수근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쯧쯧 저리 여리고 굼뜨다니. 곧 거미에게 잡히기 십상이다.”

 밤새 주변 공기와 소리에 적응하고 날개를 말리느라 세상을 음미할 겨를이 없었다. 새벽이 되어 햇볕에 양 날개의 이슬이 사라지자마자 몸 안의 어떤 구조가 근질근질했다. 참을 수 없었지만, 하나 둘 셋, 조바심을 진정시키고 차분하게 시작했다. 매엠 매엠 매엠 매엠 매엠 매엠, 메에 -------.

 얼마나 뿌듯하고 기뻤던지. 아파트 여러 동 사이의 아침 공기를 가르고 내 소리는 멀리멀리 퍼져 나갔다. 한 소절을 힘껏 연주하고 난 후 깨달았다. 나는 소리 내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는 것을.

 내 노래가 끝나자마자 주변이 웅성거렸다. 내 형제들 외에 많은 매미들이 몰려와 있었다. 가만히 나를 바라보는 어떤 참한 매미도 보였다.

 “이렇게 우렁차며 맑은 소리는 처음이야!”

 “마자마자. 너는 두목 심사에 나가야 해. 초록색 머리가 귀티까지 나는 구나”

 나는 몇 차례의 치열한 테스트를 통과하고 우여곡절 후 수명산 아파트 우두머리 매미가 되었다. 즉 수명산 근방에서 나처럼 멋지게 우는 매미는 없다는 뜻이다.

 매미 우두머리는 음악을 주관한다. 아파트 단지에서 날마다 매미들의 연주를 조화롭게 이끌고 음악회도 열어야 한다. 우리에게 여름 하늘 밑 훌륭한 화음은 가장 중요한 미션이다.

 가만히 살펴보니 매미 박사님들도 우리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우리가 열심히 우는 것은 짝짓기를 위해서 혹은 다른 수컷을 불러서 함께 큰 소리로 천적을 위협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맞는 말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다.

 고매한 사랑이 이유가 없는 것처럼 -당신이 예뻐서도, 착해서도 아니고 그저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 매미는 소리를 위해 소리를 낸다. 굳이 이유를 붙인다면 한여름의 음악을 위해서 소리 내는 것이다.

매엠 매엠 매엠 매엠 매엠 매엠, 메에-------.     


2. 어머니의 교훈

    

 우리를 낳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뵙지는 못했지만 땅속에서 신기한 경험을 했다. 알이었던 시절 벚나무 가지에서 함께 수액을 먹고 자랐던 형제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3년간 애벌레로 굴속을 전전하며 한 번씩 허물을 벗을 때마다 어머니 교훈이 한 가지씩 마음속에서 메아리치는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소개한다.

* 아름다운 소리는 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매일 아침 일정한 시간을 내어 소리를 다듬어라.

* 아이들 있는 곳에서 사는 것이 참매미의 가장 큰 복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은 아파트에 터를 잡은 거다. 시골이나 산속이 좋다는 유혹에 넘어가면 안 된다. 요사이 시골은 어르신뿐이다.

 어린이는 우리를 사랑하고 갈망하며 노래에 귀 기울인다. 매미채를 들고 잡으러 오기도 하지만 짝짓기를 마치자마자 어차피 죽어야 하는 운명이다. 짝짓기 완수 후 꾸러기들에게 발견되어 표본상자에 안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몇십 년 혹은 더 오래도록 (만일 국립 표본실에 들어간다면) 네 모습이 보존될 것이다.

* 우리는 여름철 소리 세계의 왕이다. 현악 앙상블 보다 더 부드럽고 조수미 소프라노보다 더 다채롭다. 여름의 음악을 담당한다는 자부심을 가져라. 아침 일찍 새들이 촐싹대도 기죽지 말아야 한다. 합주의 묘미를 모르고 그저 솔로만 하는 족속이다. 함께 어우러지는 매미 앙상블이 그네들보다 차원이 높다.

* 세상에 나가면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약식으로 친매파와 반매파, 풀어쓰면 친매미파와 반매미파다. 그들에 맞춰 적절히 대응해라.

 반매 하는 사람들은 늘 투덜댄다.

― 나무 많은 아파트에서는 매미 땜에 못 살겠어. 완전 소음공해야.

 친매들은 일편단심 우리 팬들이다.

― 서울에 매미가 없으면 무슨 여름이야? 나는 매미 때문에 여름을 기다려.    

 

3. 그가 내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7월 17일 아침 느티나무에서 정신없이 내 소리에 취해있을 때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연주를 잠시 멈추고 슬그머니 눈을 뜨자 바로 앞에 나를 바라보는 커다란 눈망울이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포충망을 어설프게 들고 서 있는 소년의 눈.

“민수야! 저기 보이지? 재. 망을 한번 덮쳐봐.”

“초록빛이 너무 예뻐요.”

“저렇게 가만히 있는 놈을 빨리 잡아야 해.”

“보고 있는 것이 더 좋아요. 재 이름을 참맴이라고 해야겠어요. 제일 참매미스러워요.”

“마음대로 하렴. 아빠 눈에는 다 똑같아 뵈는데.”

“참맴 안녕! 내일 또 봐.”

 민수가 내 이름을 지어 주었을 때 나는 너무 좋아 나무에서 떨어질 뻔했다. 그러고도 흥분해서 한나절동안 노래 할 수 없었다. 그날 저녁 내내 민수네 집을 기웃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민수네는 대대로 친 매미파였다. 민수 방에는 민수 아빠가 민수 나이였을 때 채집한 표본상자가 있는데 우리 조상 참매미와 다른 족속 매미 표본이 가득했다. 조금 있으면 민수를 위해 삼촌이 미국의 소수매미를 구해 온다고 한다. 민수 누나 민영이는 채집에는 관심이 없지만 매미 노래에 대한 글을 지어 상을 탔단다.

 처음엔 민수방 방충망에 죽은 듯이 붙어 있었는데 표본 상자 속 조상의 모습을 좀 자세히 보려다 그만 나도 모르게 지지직 소리를 내고 말았다.

― 어머머 애 좀 봐. 나방 아니고 매미네. 애! 여기 나무 아니야. 워이 워이. 하여튼 도시 불빛 때문에 매미들이 밤 된 걸 모른 다니까.

 그날 밤 민수 엄마에게 쫓겨나고서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또 민수네 집 앞 느티나무로 향했다. 이번에는 온 형제들을 불러 모아 함께 실력을 뽐냈다. 아침잠 없는 반매미파 어르신이 새벽의 벤치에서 투덜거렸다.

― 웬 매미들이 아침부터 야단이람?

 민영이가 노랫소리에 잠이 깨서 눈을 비비며 창가로 나와 두리번거렸다. 우리를 찾는 것 같았다.

― 늦잠꾸러기 우리 딸 벌써 일어났어?

― 세상에~ 엄마! 매미들이 돌림노래를 해요. 마디마디 정확히 떨어지는 돌림노래요!

매엠 매엠 매엠 매엠 매엠 매엠, 메에-------.

               매엠 매엠 매엠 매엠 매엠 매엠, 메에-------.

                              매엠 매엠 매엠 매엠 매엠 매엠, 메에-------.   

  

4. 분홍이와 악맴    

 

 내가 허물을 벗고 난 아침, 첫 곡조를 연주한 후 많은 매미들이 나를 둘러쌌을 때 유난히 영롱한 눈을 가진 매미가 있었다. 모습이 아리따워 마음에 담아 두었지만 세상일에 바빠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 매미를 다시 만난 것은 악맴 때문이었다. 악맴은 소리가 거칠고 제멋대로여서 동료들의 미움을 사고 그런 별명을 얻었다. 우두머리는 시끄러운 소리를 제어해야 한다. 그날도 너무 큰 소리를 내고 있는 악맴을 경고하려 벚나무로 날아갔을 때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악맴이 어떤 암컷 매미가 싫다고 도망가는 데도 거듭거듭 프로 포즈를 하는 것이다. 매미 규칙에 의하면 한번 싫다고 의사 표현을 하면 그 매미 근처에서는 울지 않아야 한다. 악맴의 소리가 점점 커지는 이유를 알았다. 저렇게 울면 사람들 중에 반매미파가 많아지는데.

 악맴은 내 모습을 보자마자 구애를 포기하고 줄행랑을 쳤다. 기진맥진 남겨진 그 매미의 눈을 보니 일주일 전 생각이 났다. 그때 나를 조용히 바라보던 어떤 눈동자. 녹색 머리와 갈색 날개 빛이 나와 비슷한 그 매미를 분홍이라 부르기로 했다.

 음악회가 끝나면 내가 너를 위해 노래할게, 이렇게 얘기 하고 싶었지만 막상 엉뚱한 소리가 나왔다.

“내일 재밌는 곳에 데려다줄게.”


(후편에 계속)


Photo by Joshua J. Cotten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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