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비브라토의 원조
다음날 분홍이를 데리고 간 곳은 민영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다. 우리는 방과 후 합주반 교실 창문 근처를 기웃거렸다. 현악합주는 매미앙상블과 비슷하고 그중에서도 첼로 소리는 부드럽게 감싸며 어우러지는 것이 우리와 잘 통한다.
하늬초등 합주반은 광복절 음악회에 초빙되어 방학 기간에도 막바지 연습 중이었다. 첼로 선생님이 열심히 비브라토를 가르치고 있었다.
― 팔꿈치를 회전축으로 해서 손가락 끝마디 살로 여러 번 현을 누르는 거야. 옳지 그렇게, 더 빨리.
그 광경을 바라보던 분홍이와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누워서 떡먹긴데.”
“참맴님이 한번 시범을 보여 드리세요.”
맴맴맴 하다가 매에------엠 하는 후렴구에서 우리는 비브라토를 한다. 배에 있는 발음근으로 아주 여러 번 진동막을 움직여서. 1분에 300번은 따라 할 수 없겠지만 단풍나무에 누워 제대로 하는 법을 보여주기로 했다. 일단 하늘을 보고 누워서 요렇게.
매엠 매엠 매엠 매엠 매엠 매엠, 메에-------.
― 비가 그치니 매미들이 야단이야. 와우, 저 가지 위의 재 좀 봐. 발라당 누워서 배불뚝이네.
6. 매미 콘서트
8월 15일 수명산 공원에서 열린 매미 음악회는 미안하지만 광복절 기념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가장 많이 모일 수 있는 날로 정한 것이다. 그래서 매미로서는 2022년 신년 음악회이자 송년 음악회다. 리허설 때 불협화음을 내는 악맴의 방해가 커서 당일엔 형제들이 그를 멀리 보내기로 했다.
프로그램은 몇 개의 솔로와 마지막에 전체가 참여하는 교향곡으로 구성된다. 모두가 솔로 하겠다고 아우성이지만 음색이 독특하고 고운 매미만 뽑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되었다.
① 풀매미들의 <보헤미안 랩소디>로 시작하다. “칫칫칫 칫 치짓 채칵채칵채칵”
② 쓰름매미 대표가 정통파 테너 스타일로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부르다.
“스데---욜 스데---욜 스데---욜 스데---욜”
③ 소요산 매미가 샹송을 부르기 위해 강원도에서 원정 오다.
“지--잉 트웽! 지--잉 트웽! 지--잉 트웽! 지--잉 트웽! -------- 타카타카타카타카”
④ 소프라노 디바 애매미가 매미 아리아를 선사하다.
서주 “씨우― 쥬쥬쥬쥬쥬……”
제시부 “쓰와 쓰와―쓰 츠크츠크츠크… 오―쓰 츠크츠크… 오―쓰 츠크츠크…오―쓰 츠크츠크…”
간주 “히히히쓰 히히히히히히…” 발전부 “씌오츠 씌오츠 씌오츠 씌오츠 …”
종결부 “츠르르르르…”
⑤ 참매미 중창단의 매미송
⑥ 2022년 여름 교향곡
지휘: 참맴
단원들: 위의 솔로들과 중창단 포함 아래 매미들 참여
털매미 “찌찌찌----쓰” 참깽깽매미 “뜨르르르---륵” 말매미 “차르 ---- 쏴아 ----”
유지매미 “지극지글지글 ----- 딱 따그르르르”
― 매미들이 오늘따라 유난 하구만
더위를 피해 공원에 앉은 어르신들이 한마디 씩 했다.
― 엄마! 이런 교향악은 들어본 적이 없어요. 자연의 음악은 사람들 거와는 차원이 다르네요.
역시 민영이 밖에 없다. 민영이를 위해 다음번엔 대만의 귀신저녁매미들을 초대해 봐야겠다. 2부로 여름밤의 즐거운 납량 특집을 들려줘야지. 호리귀신 저녁매미, 초록귀신 저녁매미의 울음을 들으면 어린이들이 혼비백산하리라.
(너희들) 죽었다 죽었다 죽었다 ----- 키키키키
으아 ----- 으아 ----- 키키키키
7. 사랑의 슬픔
다음날에야 우리 음악회가 성공한 이유를 알았다. 형제들은 악맴을 유인하는 데 실패했다. 악맴이 거센 기세로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공원을 향해 날라 오고 있을 때 그를 막은 매미는 분홍이었다. 그녀는 악맴의 짝짓기 상대가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느티나무에서 생애를 다했다.
슬픈 일 만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민수는 분홍이를 채집했고 악맴은 선택받지 못했다.
― 아빠, 저 수컷 참매미는 좀 미워요. 이왕이면 머리가 반듯하고 털이 예뻐야죠.
나는 민수의 표본 상자에서 분홍이를 만나기로 결심했다. 몸은 살아 있지 않을지라도 영혼이 담긴 표본으로 몇십 년 또는 영원히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날 민수네 아파트 앞 느티나무에서 죽은 척 엎드려 있다가 아이의 포충망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8. 표본 상자에서
이제 몸은 죽어 핀에 꽂혀 있으나 영혼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다. 이곳은 VIP들이 많아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제일 어려운 분은 민수 아빠가 초 2 때 잡은 참매미 어르신인데, 27년 전이니 거의 나의 6대 증조부다. 또 소문에서나 듣고 만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한 유명인사, 17년 소수매미도 있다. 1999년과 2016년 생(生) 미국의 소수매미와 어깨를 나란히 하다니! 카페에 갔는데 바로 옆자리에서 《탑건 1》의 젊은 탐과 《탑건 메버릭》의 육십 세 탐 크루즈를 함께 마주쳤다고 생각해 보라.
그렇지만 가장 자랑스러운 일은 분홍이와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짝짓기를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려면 어떠랴?
― 이 암수 참매미는 어쩜 이리 똑같니? 초록 머리는 튼실하고 날개는 살아있는 것처럼 빛나!
우리는 표본상자 안에서 날마다 꿈을 꾼다. 지난 여름날의 추억과 우리 후손과 그때의 어린이들이 빚어낼 미지의 여름 이야기를.
그리고 얼마 전부터 새로운 모의를 하고 있다. 아니 모의라기보다 연습에 가깝다. 2차 음악회 리허설이다. 미국에서 참여한 매미들 때문에 훨씬 다채로운 곡이 만들어질 것 같다.
― 너희들은 살아있지 않잖아?
맞다. 이번에는 영혼의 화음으로 엮는 음악이다. 밖에서 들리지는 않으나 가만히 온 마음을 다해 귀 기울이면 들을 수 있는 곡조로.
― 언제, 누구를 위한 음악회로?
― 2023년 여름, 브런치 월드 작가님들을 위한 음악회~
매엠 매엠 매엠 매엠 매엠 매엠, 메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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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1. 매미의 종류와 울음소리, 생물학적 특성은 다음의 두 책을 참고하였습니다.
『우리 매미 탐구』 이영준
『미래 생태학자를 위한 매미 탐험북』 국립 생태원
2. 대문의 사진은 20여년이 지난 저희집 표본상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