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을 위해
달을 따다 바친
시인도 있다는데
나라고 못할 것은 없겠지
글벗을 위해
가을과 담판을 지어 보리라
가을님에게 면담 요청
아무나 만나주지는 않는다고 한다
자격 요건
소녀들, 사랑에 차인 사람 ---, 시인 등
우선 시인 자격으로 접수를 했다
그의 아지트는
앞선 시인의 귀띔으로
황갈빛 숲길을 따라가다 보면
황금 궁전이 나온다 (정태현)
가을 걷이하는 처녀의 노랫소리가 들리면
거의 다다른 것이다 (워즈워드)
마지막엔
보릿단 속의 생쥐가 안내한다 (예이츠)
태풍 수준의 비바람 치고
해났다 소나기 뿌렸다
그를 만나러 가는 날엔 방해가 많았다
선배 시인은 멀리서만 보았나 보다
가을님은
빛나는 주홍빛 홍시 궁전의
억새풀 보좌에 계시는 걸
모습은 감추고 목소리만 들려주네
(먼저 그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자)
지난 2주간 가을볕 연장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산책과 야외 테이블의 커피를 흠씬 즐겼지요
내 호의를 알아주는군요
그런데 단풍이 어중간 파스텔톤인 것은 좀 …
(아이코 실수)
그의 목소리가 뾰로통 해진다
용건이 뭐예요
가을님, 조금 천천히 떠나 주세요
아니면 그대로 머물러 계시거나
2023년엔
제 글벗 두 분에게 이별의 충격이 큽니다
남은 기운 가을동안 깡그리 불태우고
겨울잠에 들어가 버린대요
친구가 파충류 되는 것을 어떻게 바라봅니까?
다른 한분은 아쉬움에 병이 날 지경예요
나뒹구는 플라타너스도 거두랴
그분의 감성 글이 멈추면
브런치가 삭막해집니다
접객의 줄이 길어
이야기를 못다 하고 물러났다
울먹이며 불안하던 아이 다독이고
출근했던 비법 나누려 했는데…
창을 두드리는 빗줄기에
가을님 기별인가
밤 지새운 화요일 아침
조간신문의 헤드라인
한파 특보
시베리아에서 오는 차가운 삭풍으로
겨울의 문이 열렸다
아! 뭐가 잘못된 것일까?
초짜 시인이면 안 되는 건가?
빼어난 미인의 마음은
종잡을 수 없다더니
칼같이 이별 선언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는 여친 같다더니
소문이 틀리지 않나 보다
좋아했던 만큼의 허무함을
감당해야 하나?
겨울 외투 꺼내
출근하는 수요일
낙심하는 어깨 위를 누가 스친다
부드러워진 공기 속
나부끼는 은행잎 몇 개
누가 등을 다정히 두드린다
따뜻한 가을빛의 차분한 목소리
9개월의 부재를 슬퍼하지 마세요
3막이 끝나는 척 휘장을 두르지만
주욱 당신들 곁에 있습니다
흰 눈 속에서 휴식을 취한 후
봄날, 갖가지 색깔을 챙기고
여름, 불타는 에너지를 모아
더욱 찬란한 모습으로 곧 돌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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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대웅 작가님의 <10월을 떠나보내며>와 윤이창 작가님의 <안녕, 짜장면> <불안의 덩치>에 영감을 받아 쓴 시입니다. 몇몇 표현들을 그 안에서 빌렸습니다.
표지 그림: 존 밀레이의 <가을 낙엽> 185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