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화가의 집에서

말레비치 <쉬프레마티스트 전망 속의 남자>

by 램즈이어

화가의 집 앞에서

동그라미와 세모는 울상이었다

자신들은 찬밥이라며


그가 정사각형만 예뻐했으니까

순수한 창조의 첫걸음

살아있는 고귀한 아이라며


주인의 애지중지

검은 사각형을 만났다


감수성만 남기고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에서 벗어나

깜깜한 사막으로


원시인의 기호 같은 저를 낳았죠


두 번째 아이는

흰 바탕 위의 흰 사각형


모든 색을 버렸어요


찌꺼기 없는 가장 기초적 형태에서

빛나는 회화의 정신은

시각의 경계를 넘어

4차원 우주공간으로 날아갑니다


영원과 진실을 마주할 수도요


휴 어려워

내 타입 아니라

돌아가려는 찰나

툭!

까망 아이 속에서

뭔 글자가 떨어진다

"어두운 동굴 속 니그로들의 전투"

아무것도 없어야 하잖아?

무(無)를 내세우면서…

얼굴 붉히는 녀석 뒤로

모습을 드러낸 주인


블라우스 무늬 속의

깊은 바다 풍경, 숲 그림자

청색 하늘과 시내

아담한 동산, 나무들

그의 감옥살이 장소도

말끔하고 예쁜 하얀 집으로


이실 직고 하기를

이야기가 하고 싶어 몰래 새겨둔 겁니다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악수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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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노트: 쉬프레마티즘(절대주의)은 1915년 카지미르 말레비치가 주창하여 러시아 혁명전후의 미술계를 구성주의와 함께 이끌었던 전위 미술사조입니다. 감각의 궁극을 탐구하는 기하학적 추상주의로서, 회화의 재현성을 부정하고 인간의 내적인 현실에 치중했습니다. 초기에는 모스크바 미술학교 교수로 재직했으나 스탈린이 권자에 오르며 사회주의적 현실주의(Socialist Realism)만 공식적으로 허용되어 KGB 헤드쿼터에서 짧은 구금생활도 했습니다. 자화상 성격의 오늘 그림은 후기 작품이라 색과 형태와 스토리가 조금 담겨 있습니다.

2015년 트레차코프 미술관은 <검은 사각형> 발표 100주년 기념 X 선 조사에서 밑그림 두 점과 화가의 낙서를 발견했습니다. 그 글자는 프랑스 작가 알퐁스 알레의 동명 작품 "어두운 동굴 속 니그로들의 전투"입니다.


KAZIMIR MALEWITSCH <Man in a Suprematist Landscape>1930/31, 빈 알베르티나 미술관
<흰 바탕위의 흰 사각형> <검은 사각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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