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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즈이어 Aug 27. 2024

한 여름밤의 밀땅

모기와 나

 올 8월은 낮 밤으로 힘들었다. 지글거리던 해님이 퇴장하면 잠시 한시름 놓아야 하는데 또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는 국지전(局地戰)이 기다리고 있어서다. 여명이 찾아오는 시간까지 모기는 사투를 벌이며 나를 좇고, 나는 팔다리 상처에 피를 흘리며 녀석을 공략했다.

 전생(前生)이 있다면 내가 그때 모기를 목숨을 다해 짝사랑했나 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한숨지으며 다음 생(生)에는 꼭 모기가 저를 지독히 따라다닐 수 있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했나 보다. 이번 생에 이르러 그 기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걸 보니.

 나를 향한 모기의 진한 사랑은 중학교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여름이면 온 팔의 붉게 솟아오른 여러 구진(丘疹)들과 진물 흐르는 상처에 선생님의 근심 어린 시선을 받곤 했다. 온몸에 심각한 피부병 모양의 모기 물림 자국을 가진 채 한 철을 보냈다.

 나이 들며 조금씩 하다 싶었는데, 올해 유난해졌다. 모기도 낮 동안 심각하게 열을 받아 저녁에 카타르시스가 필요한 것인지, 올여름 날씨의 난폭한 성깔을 보고 배운 것인지. 비겁하게도 한참 꿀잠 자는 새벽 시간에 얼굴 주변에서 약을 올렸다. 남편의 분석에 의하면 밤새 흘린 내 땀 냄새가 모기를 유인한다고 한다.

 큰 아이가 분가한 후 안방과 마주 보는 그 방을 서재로 꾸미고 편안한 침대를 들여서 야밤형의 내 아지트로 만들었다. 자연스레 분방을 하니 아침형 남편과 서로 수면을 방해받지 않아 좋았다.

 처음에는 남편과의 연합군으로 선방했다. 새벽에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짝꿍은 내 방의 씩씩거림을 듣자마자 파리채를 들고 나타났다. (얼마 만에 만나는 기사도 정신인가?) 후려치는 솜씨나 벽이나 컴퓨터에 살포시 내려앉은 녀석을 순간에 때려잡는 기량이 뛰어나다.

“잡았다!”

 비몽사몽 중 열세에 몰린 전투에서 들려오는 의기양양한 목소리는 역사 속에서 큰 무공을 세운 장수만큼이나 믿음직스러웠다.

 우방의 지원도 전쟁이 장기화되면 차츰 사그라드는 법. 새벽에 홀로 모기와 마주하는 날이 많아졌다. 남편의 조언대로 취침 전 에프 킬라로 온 방을 채우고 에어컨으로 방 온도를 매우 낮췄다. 추운 공기로 감기 걸릴 뻔하고  화학 성분으로 호흡기 나빠지는 위험을 감수했건만, 어김없이 새벽이 되면 웽하는 녀석의 근접 비행 소리가 들린다. 할 수 없이 거실로 퇴각.

 긴팔 소매 긴 바지를 입고 자기로 했으나 더위에 오래가지 못했다. 모기 기피제도 구입해 보았다. 온몸에 발라도 물리는 것은 비슷해서 그 액체 씻어내느라 샤워할 때 힘들기만 했다. 전기 모기채를 사서 공기를 가르며 사살하는 훈련을 했건만 한 마리도 성공하지 못해, 남편이 구사하는 플라스틱 파리채만 못함이 드러났다.   

 십여 년 만에 모기향도 피웠다. 아련히 어릴 적 추억을 불러다 주기는 했으나 그 향기에 괴로운 이는 오히려 사람이고, 이 녀석은 모락모락 연기 사이를 유유자적 날아다닌다. 퇴치와는 정반대로 모기들이 사랑하는 향기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기민한 의외의 진지(陣地) 구축!

한니발 전쟁에서도 승리를 위해 로마군이나 카르타고 군이나 머리를 싸맸던 부분이다. 야밤의 전쟁에서 나도 새로운 요새로 말미암아 승기(勝機)를 잡았다.

 모기장을 누군가 조언한 적이 있는데 작은 공간에 갇히는 것이 싫고 옛날 스타일이 먹히려나 싶었다. 그런데 침대 사이즈에 맞는 퀸사이즈를 사니 답답하지 않고 훌륭한 아지트가 만들어졌다. 안개 분위기 공간에 그림 도안의 세모 천장까지 있으니 요새치고는 재미와 낭만이 듬뿍이다. 모기장 안에 책, 안경, 안약, 리모컨, 핸드폰을 정렬해 두고, 동심의 세계에도 잠겨 보았다.

 비행체가 없는 것을 거듭 확인한 후 모기장 지퍼를 잘 채우고 자리에 들었는데 새벽에 또 웽하는 소리에 놀라 잠이 깼다. 경계태세에 돌입하고 살펴보니 모기장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들어오지는 못하고 망 밖으로 내 머리맡 주변을 맴도는 녀석! 통쾌했다.

“용용 죽겠지~”     

 이제 내가 한껏 약 올릴 수 있었다.

 찌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녀석은 여러 날 동안 새벽마다 망을 따라 내게 접근하곤 했다. 말을 타고 여러 날 동안 침략할 수 없는 로마의 성벽을 순찰하던 한니발처럼.

 요즈음 며칠 새벽에 웽소리가 없어졌다. 아직 모기가 사라질 시기는 아니고 낮에 돌아다니는 걸 보면 여명의 싸움을 포기한 것임에 틀림없다. 아침잠이 방해받지 않아 좋지만 가끔 깼을 때 저공비행이 없는 조용함이 낯설고 허전하다. 

미운 정(情)도 정이라고 설마 내가 녀석을 그리워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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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의 그림: 챗 GPT 가 그려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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