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을 꿈꾸는 베아트리체
반전으로 얘기하다 『신곡』 (4)
## 여전사 베아트리체
『새로운 인생』에서 베아트리체는 우아하며 고상하고 겸손하다. 외모와 성품 모두 훌륭했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이런 모습만의 그녀를 기억하며 칭송한다면? 베아트리체는 억울할 것이다. (단테는 더 억울할 것이고) 『신곡』 <천국>에서 베아트리체가 혁명가의 모습을 띄는 부분이 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폭풍우 일어
고물을 뱃머리 쪽으로 돌리고
곧이어 선단이 직항하면
꽃이 핀 뒤에는 열매가 맺히겠지요. (천국편 27곡: 145-148행 이마미치/이영미 번역)
“기다리고 기다리던 폭풍우를 일으켜 배의 방향을 거꾸로 돌려 거대한 선단을 똑바로 내달리게 합시다. 그렇게 해야만 꽃이 핀 뒤에 진정한 열매를 볼 수 있겠지요.”
이제까지의 세상의 움직임과는 다른 움직임으로 세계와 인류를 구제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
사랑과 영성이 가득한 모습으로 단테와 대화를 이어가다가 베아트리체는 27곡의 마지막을 이렇게 맺는다. 부드러운 여인의 마음속에 이렇게 원대한 이상(理想)이 있었다니. 고전적인 여성성(女性性)을 넘어서는 신선한 이미지다.
그 옛날에도 독자를 감동시키려면 무엇인가가 다른, 여성 캐릭터가 필요했나 보다. 단테의 스승 베르길리우스는『아이네이스』에서 여전사 카밀라를 등장시켰다. 디아나의 황금 활과 화살촉을 메고 나타나 수많은 남자 병사들의 싸움 이야기에 지루함을 덜어준다. 오른쪽 젖가슴을 드러낸 채 무공을 세우며, 다음과 같은 기량을 갖추었다.
그녀는 베지 않은 곡식 줄기의 맨 윗부분 위를 나는 듯 달리면서도
달릴 때 부드러운 이삭을 상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며,
난바다 위를 달리면서도 부풀어 오른 파도 위에서 몸의 균형을 잡아 바닷물에 날랜 발바닥을 적시지 않았을 것이다. **
『돈키호테』에서 세르반테스는 여자 목동 마르셀라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사롭지 않은 부유함, 아름다움, 성품을 소유했으나 혼자서 양을 치며 목동으로 살기를 선택했다. 위험하고 울창한 숲을 거칠게 누비면서. 그녀에 대한 짝사랑에 스스로 목숨을 잃은 청년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비난하는 와중에, 장례식에 용감히 나타나 당당히 방어하는 스피치를 한다.
대문호들이 일찌감치 모셨던 의외성과 반전의 여성상(女性像)은 오늘날에도 그 흐름을 이어가는 것 같다. 최근에 브런치 북에서 비슷한 캐릭터를 발견하고 그만 애독자가 되고 말았다.
여자 군인? 멋지고 강한 여자가 떠오른다. 심지어, 가끔 드라마에 등장하는 그녀들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외모와 직업의 불일치에서 빚어지는 의외성을 떠올려본다. 그렇게 안 보이는데 군인. 그 반전이야말로~ ***
## 단테의 혁명 정신
베아트리체의 입을 빌어 표현했지만 사실은 단테 자신의 마음이 아닐 수 없다. 그는 현실 참여적 문인이라 캄팔디노 전투에 기병대로 참전했고 피렌체를 위해 5년간 정치활동을 했다. 조국을 사랑하고, 동료 시민들의 복지와 안녕을 위해 그가 바친 노력의 대가는 혹독해서 처음에는 2년, 나중에는 영구 추방령이 내려진다. (귀환 시 화형 선고) 이 도시 저도시를 전전하는 유랑 생활 중에 저작에만 몰두한 줄 알았다. 그 마음속에 이런 불씨를 끝까지 간직하고 있는 줄 몰랐다.
천국을 이렇게 묘사하는 한, 정쟁에 패했지만 단테는 아직 혁명정신을 품고 있으며 땅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미루어 헤아릴 수 있다. *
단테의 대가(大家) 이마미치 교수가 이렇게 칭찬했듯이 자신의 꿈이 땅을 이롭게 한 것을 천국에서 보고 있다면 좋겠다. 그가 떠나자마자 르네상스의 물결이 거대한 선단(船團)의 항해처럼 밀려왔고,『속어론』이 꽃피어 피렌체 속어가 공식 이탈리아어가 된 것을. 그의 바람이 마침내 열매를 맺혀 교황청이 더 이상 정치를 안 하는 세상이 온 것을.
---
* 『단테 신곡 강의』 이마미치 도모노부 이영미 옮김, 교유서가 2022 (535-537 page)
**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천병희 옮김, 2007, 도서출판 숲 (7권 808-811행)
*** 수진 작가님 <여자 군인의 가벼운 고백> 브런치북 제2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