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 깊음에 대하여
성 토마스와의 대화, 단테의『신곡』(2)
천국의 네 번째 하늘에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들려주는 훈계가 있다. 사려 깊음(prudentia, prudence)에 대한 것인데, 아리스토텔레스의『니코마스 윤리학』에서 전개된 실천적 지혜(프로네시스)를 그리스도교적으로 전개시킨 덕목이라 한다.** 결국 토마스 아퀴나스의 입을 빌어하는 단테의 이야기일 것이다. 딱 내게 하는 말로 들려서 변명을 해보았다.
## 서두르지 말고 신중하라.
토마스 아퀴나스:
언제나 그대 발에 납덩이가 되어,
그대가 모르는 것을 긍정하거나 부정할 때
지친 사람처럼 느리게 움직여야 할 것이오. * (천국편 13곡:112-114)
램즈이어: 미세하게 뉘앙스가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신중해서 느리게 움직이기보다는 게으르거나 우유부단해서 가만히 있을 때도 있으니까요. 반대로 냄비 같은 성격이어서 급하게 결론 내렸다기보다, 빨리빨리 민족의 피가 흘러서 그렇기도 합니다. 동사형 인간이 돼라는 자기 계발서를 읽은 후 가속도가 붙기도 했고요. 젊어서 육아와 직장일로 여러 가지 일이 밀려 닥칠 때 우선순위를 세워 신속히 처리하는 습관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의 성격에 따라 지혜롭게 속도 조절을 하라는 말씀으로 다가오기도 하네요.
그렇잖아도 요사이는 '진득함'이나 '느림의 철학' 같은 단어가 인기를 얻고 있으니, 현자(賢者)께서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 매사를 너무 안이하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토마스 아퀴나스:
너무나 쉽사리 단정 지어
들판의 이삭이 채 여물기도 전에
어림으로 값을 매기는 사람이 되지 마라.
겨울에는 염려스럽기 그지없는 가시나무가,
후에 그 앙상한 가지에 장미꽃을
피운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드넓은 창해를 쏜살같이 치달려
머나먼 뱃길을 건너간 배가
항(港)으로 들어서자마자 가라앉는 모습을 보았다.
한 사람이 훔치는 것을,
다른 이가 봉헌하는 것을
보았다 하여 세인(世人)이여 신의 심판이
끝났다 여기지 마라, 있을 수 있는 일은
전자의 갱생, 후자의 타락 ** (천국편 13곡 130-142 이마미치 도모노부 번역)
램즈이어: 얼마나 뜨끔한지 모르겠습니다. 가엾은 사람들을 섬겨서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했다는 글을 많이 읽었건만. 앞의 가시나무는 심난하다 피해 가고, 허물 보이는 다른 사람은 판단하기 바빴네요. 초라해 보이는 이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으며.
한국에서는 김칫국부터 마신다고 하는데 이탈리아에서는 들판의 이삭을 미리 값 매긴다고 하는군요. 일본에서는 너구리 굴 보고 가죽 값부터 계산한다고 한답니다. 자주 마시다 보니 제 김칫국 레시피는 꽤 다양해졌고, 그 맛에 길들여지려 합니다.
어떤 사람의 현재 모습으로 그 사람을 단정하지 않기는 퍽 어렵습니다만. 브런치에서 조금 실천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구독자수가 아주 크지 않아도 주옥같은 분들을 알아본 것이요. 나중에 베스트셀러쯤은 거뜬히 낳을 훌륭한 작가님이 될 거라는 믿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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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단테 알리기에리 장편서사시, 귀스타프 도레 그림, 김운찬 옮김, 열린책들 2007
**『단테 신곡 강의』이마미치 도모노부 이영미 옮김, 교유서가 2022 (553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