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열정의 나라
Buon Zelo, 단테의『신곡』(9)
단테를 생각하면 ‘사랑’ 못지않게 ‘열정(열망)’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마음속에 불을 간직한 사람 같다. 자연스레 이 주제에 관하여 할 이야기도 많았을 텐데 <천국> 22곡에서 그 부분을 찾았다. 일곱 번째 하늘 토성천에 이르면 영혼의 빛들이 더욱 찬란히 움직이고, 그동안 나왔던 ‘정의’의 미덕 위에 ‘사랑’과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 p 568
(그녀가 바라는 대로 눈을 돌리자)
백여 개의 작은 빛 구슬이 무리 지어
서로를 비춰 아름다움이 더하는 것이 보였다. * p 567 (천국 22곡 22-24)
불꽃들의 회전과 천둥소리와도 같은 큰 소리에 창백해져 겁을 내는 단테에게 베아트리체가 상냥하게 건네는 말이 있다.
「그대는 천국에 있음을 모르나요?
천국은 아주 성스럽고, 모든 것이 훌륭한
열망에서 나온다는 것을 모르나요?」 (22곡 7-9) **
베아트리체가 말하는 훌륭한 열망을 풀어서, 아마미치 교수는 천국은 올바른 열정(buon zelo)의 나라라고 했다. 선의가 담긴 뜨거운 사랑으로 일하는. * 다른 사람을 향하건 자신을 향하건 이런 선한 열망은 좋은 열매를 맺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착한 마음이 있으나 뜨뜻미지근하면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하고, 엉뚱한 방향으로의 열정은 위험할 수 있다. 이곳 토성천에서 단테는 선한 열정으로 이름난 영혼들을 만나고 그중에서도 성 베네딕투스에게 마음을 활짝 연다. 초록동색(草綠同色), 끼리끼리 논다는 말처럼 열정파끼리 서로 반가워하는 모습이다. 성 베네딕투스는 귀족의 삶을 버리고 청빈과 노동의 삶을 택하였고, 단테의 열정은 문학으로 향했다.
여기 다른 모든 관조의 빛들은
거룩한 꽃과 열매를 낳는 뜨거운
열정에 불붙었던 사람들이었지요. (22곡 46-48) **
그대의 모든 열정 속에서 주목하는 훌륭한 모습은
나의 신뢰감을 활짝 열어 주었으니,
마치 태양 덕택에 장미꽃이 필 때
그 모든 역량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22곡 54-57) **
마지막 33곡에서 다시금 단테의 단어 ‘열망’이 나온다. 최고의 하늘에서 눈이 더욱 맑아진 단테는 드디어 하느님의 빛을 직접 바라볼 수 있게 되는데, 그 사랑(하느님의)으로 열정의 바퀴를 다시 굴려보겠다고 한다.
다만 내 정신이 섬광에 맞은 듯했고
그 덕택에 내 소망은 마침내 이루어졌다.
여기 고귀한 환상에 내 힘은 소진했지만,
한결 같이 돌아가는 바퀴처럼 나의
열망과 의욕은 다시 돌고 있었으니,
태양과 별들을 움직이는 사랑 덕택이었다. (33곡 140-145) **
‘나의 열망과 의욕’의 대부분은 아마도 단테의 글쓰기 과업일 것이다. 단어 '별들(stelle)'로 끝나는 이 마지막 시행(詩行)으로 그의 신령한 희곡(La Divina Commedia)도 완성되었다.
베아트리체가 이름 붙인 올바른 열정의 나라는 지상에서도 훌륭한 사람들을 통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것 같다.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모습의 꽃을 피우며.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열정’을 생각하고 있으니 브런치 작가님들도 같은 주제의 글을 올리시는 것만 같다. 다음과 같이 시작되는 문장은 사춘기 소녀의 어떤 사랑 고백 같지만, 뜻밖에 '글쓰기'에 대한 글이다. 이십 대의 군 생활 중 어느 날을 회상하는.
나의 진실한 마음과 깨끗함이 담긴 ‘열망’에 관한 고백이다.
눈물짓게 하는 소망. --- ‘글을 쓰고 싶다’
선명한 그 감각에 가슴이 터질 것 같다. 그 순간의 열망, 그 뜨거움은 결코 오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요하고 잠잠한 나의 공간에서 한동안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는다. 감당 안 될 정도로 심장이 요동치는 --- ***
'글쓰기'라는 운명의 연인을 만나, 온몸의 교감신경들이 비브라토로 반응하는 것이 어딘가 낯이 익다.『새로운 인생』에서 단테가 적었던 두근거림과 어찌 그리 흡사한지. 그 푸르고 푸른 마음을 다시 읽는 기분이다.
가만가만 수줍게 내보이던 열망도 생각난다. 정서적인 상처가 아물어 가고 있는 청소년 픽션의 주인공, 17세 소년의 마음이다.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완성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요. --- 그래서 저, 앞으로도 용기 잃지 않고 계속 글을 써보려고요. 이렇게 글을 쓰다 보면 그 끝이 어디에 가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제가 가장 하고 싶은 일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해요. ****
나도 이 아이처럼 조심스레 조금씩 내비치는 스타일이다. 사람에 따라 자기에게 어울리는 방식이 있을 것이다. 붉은 장미부터 연노랑 뽀리뱅이의 열정까지. 때가 차면 선한 의도의 뜨거움들이 꽃을 피우고 알알이 열매를 맺혀내리라. 올바른 열정의 나라, 글쓰기 세상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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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신곡 강의』 이마미치 도모노부 이영미 옮김, 교유서가 2022
**『신곡』단테 알리기에리 장편서사시, 귀스타프 도레 그림, 김운찬 옮김, 열린책들 2007
*** 수진 작가님 브런치북 [여자 군인의 가벼운 고백, 두 번째] 5화 <소중한 것을 고백하는 마음>에서
**** 지뉴 작가님 브런치북 [우리가 저 높이 날아오른다면] 30화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