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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즈이어 Dec 08. 2024

라떼 예찬

Latte is a horse? 단테의『신곡』(10)

『신곡』에서 ‘라떼는 말이야’를 만나게 될 줄이야. 단테는 지옥의 일곱 번째 원에서 고향 피렌체 유명인사 세 영혼을 만난다. 그들은 고향사람이라고 반가워하며 그에게 피렌체 소식을 묻는다. 예절과 가치가 아직 남아있는지, 아니면 완전히 없어져 버렸는지. 단테의 한탄하며 외치다시피 하는 대답.  

 

피렌체여! 새로운 부류의 벼락부자들이

네 안에 거만과 부덕의 씨앗을 뿌렸으니,

벌써부터 넌 고통을 당하고 있구나.        * (지옥편 1673-75)     


(마치 강남 부동산 개발이 한창이던 80년대 서울 이야기 같다.)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서로를 바라보며 단테에게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당부한다.    


그러니 그대 이 어두운 장소를 벗어나

아름다운 별들을 다시 보게 된다면

<예전에 나는> 하고 말하게 된다면,

사람들에게 우리에 대해 이야기해 주오.  ** (1682-85)

     

 단테더러 훗날 그가 지옥 여행하던 때, 라떼는 말이야 하고 말하게 된다면 자신들 이야기를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 시절에도 사람들은 <예전에 나는> 하며 썰을 잘 풀었다는 이야기다. 동서고금 인간의 본성이 아닐지. 요즘 세대 아이들도 결국 나이 들면, 보나 마나 후세에게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인쇄술은 멀고 파피루스 단계의 종이만 있었을 적에 풍성했던 전승(傳承) 문학도 ‘라떼는 말이야’ (back in my days)에서 발전한 스토리텔링이 아닐까?

 독서모임에서 호메로스『일리아스』『오뒷세이아』의 오랜 구전(口傳)에 대해 토의한 적이 있다. 한 문우가 시어머니 생전의 쉴 새 없었던 집안 이야기, 농사 이야기가 그립다고 했다. 그걸 모두 기록해 놓았더라면 훌륭한 책 한 권이 되었을 거라며.

 그동안 나는 무척 조심하며 살았던 거 같다. 꼰대 소리 듣고 싶지 않아서, 하루일과 후 ‘라떼는 말이야’를 대화 중에 했는지 안 했는지 엄격한 자기 검열까지 하며.  <이제 그만 꼰대 라떼> 하는 노래까지 들려오니 그 은근한 압력이 무섭지 않을 수가.

 막연하게 이건 아닌데 하는 중에 셰익스피어의 다음 문장을 읽었다.


청춘이란 미치광이는 토끼 같아서 절름발이 충고님의 덫을 가볍게 건너뛴단 말씀이야 ***

 

 충고의 덫을 이리 깡충 저리 깡충 건너뛰기 피곤해진 젊은이들이 아예 덫이 사라질 수 있는 작전을 편 것 아닐까? 라떼는 완고한 사람들만의 단골메뉴인 양 소문을 퍼뜨려서.

 그런데 최근 신문에서 재미있는 연구 결과를 보았다.  

  

처져 있는 치매환자에겐 라떼는 말이야요법이 즉효다.  

    

 위 타이틀로 의학전문기자가 쓴 칼럼을 자세히 읽어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치매환자 병원에서는 소싯적 직함부터 불러준다. ‘라떼는 말이야’가 잠자는 뇌를 깨우는 뇌 활성제 역할을 한다. 특히 즐거운 회상이 DHEA 분비를 촉진시킨다. (DHEA는 뇌, 피부, 근육의 퇴화를 회복시켜 회춘 호르몬이라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회상효과를 연구하는 회상요법학회가 설립되어 2000년대부터 회상요법을 보급하고 있다. 잘 나가던 시절의 직함을 불러주고 그 시절 주제로 수다 떨기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

 중년 이후 ‘예전에 나는’으로 시작하는 대화들이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활기찬 기운을 선물하여 기억력 감퇴를 완화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 이전에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아 두어야겠지만.)

 그러니 위축되지 고 당당하게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해야겠다. 젊어짐과 문화의 전승과 치매 사회 예방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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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천국편 단테 알리기에리,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박상진 옮김, 민음사 2007

**『신곡』단테 알리기에리 장편서사시, 귀스타프 도레 그림, 김운찬 옮김, 열린책들 2007

*** 윌리엄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 전집』1권 최종철 옮김, 민음사 2014

     <베니스의 상인> 중에서 포셔의 독백

**** <김철중의 아웃룩>에서 12월 4일 자 조선일보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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