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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즈이어 Dec 11. 2024

단테와 월계관

에필로그, 단테의『신곡』(11)

 아폴로의 첫사랑은 다프네(월계수라는 뜻)였다. 활은 개구쟁이 꼬마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큐피드를 약 올리는 바람에 그의 황금화살을 맞았다. 큐피드는 짓궂게도 다프네에게는 사랑을 내쫓는 화살을 쏘아, 그녀는 영원히 처녀로 남을 결심을 한다. 반면 아폴로의 가슴은 온통 사랑의 불길에 휩싸였다. 쫓아오는 그를 피해 다프네가 바람보다 더 빨리 달아나니, 아폴로는 자신은 적이 아니라고 새끼양이 늑대 앞에서나 이렇게 달아나는 거라고 외친다.

 그러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물어나 보라고, 자신은 산골 주민도 시골 목동도 아니고, 대단한 가문의 아들이라며 좇는 와중에 자기소개를 한다. 제우스가 아버지고 역사와 예술과 의술의 일인자라며…. 사냥개에 쫓기는 순한 토끼처럼 숲 속에서 긴박한 경주 장면이 펼쳐진다. 아폴로가 드디어 그녀를 따라잡자 다프네는 강물의 신 페네오스에게 마지막 절박한 기도를 한다. “아버지, 저를 도와주세요! 너무나도 호감을 샀던 이 모습을 바꾸어 없애 주세요.” 그녀의 사지는 차츰 나무 기둥, 나뭇가지, 우듬지로 변해갔다. 여전히 빛나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아폴로는 나무를 끌어안고 입 맞추며 말했다.   


그대는 내 아내가 될 수 없으니 반드시 내 나무가 되리라. 월계수여, 내 머리털과 내 키타라와 내 화살 통에는 언제나 네가 감겨 있으리라. 개선식에서 환호성이 울려 퍼지고 카피톨리움 언덕이 긴 행렬을 내려다볼 때, 너는 라티움의 장군들과 함께하리라. 네 잎의 영광을 영원히 간직하도록 하라! *   


 이루지 못한 첫사랑을 향한 아폴로의 기원대로 다프네는 영예와 영광의 상징이 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운동경기나 시 짓기 대회 우승자들이 월계관을 썼고, 로마 시대 개선장군들이 이어받았다. 월계수는 사철 푸른 상록수이고, 번개에 맞지 않으며, 향기가 널리 퍼져 나가므로 역사적 승전이나 불멸의 작품을 남긴 이에게 어울린다고 한다.

『신곡』을 읽다 보면 시인의 월계관을 사모하는 단테의 마음이 느껴진다. [지옥] 편에서 로마의 대시인들-호메로스,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 루카누스, 베르질리우스-이 자신을 그 그룹에 끼어주는 장면을 그렸다.


그들이 내게 명예를 부여해,

우아한 모임에 맞아들이니,     

나는 현인들 무리의 여섯째가 되었다.                     ([지옥] 편 제4곡: 100,101***/102**)


 이 대목을 읽으면서 흠칫했는데, 단테의 자긍심이 퍽 크다는 생각과 이렇게 스스로를 높여도 되나 하는 마음에서다. (이탈리아 단테 학회판에서는 이 부분을 성취된 예언이라고 주를 달았다.) *** 『신곡』을 완성한 후에 피렌체에 돌아와 정적들을 무색게 하고 시인으로서 월계관을 쓰는 백일몽을 꾸기도 한다.


이 거룩한 시가 나를 우리 밖으로

몰아냈던 잔인함을 이긴다면

이제 나는 다른 목소리, 다른 모습의

시인으로 돌아가 내가 세례 받았던

샘물에서 월계관을 받을 것이다.                        ** ([천국] 편 25곡 3-9)


 하지만 현실은 팍팍했다. 작품은 세상을 뜨기 전 가까스로 마쳤고, 사후 20년이 지나도록 고향은 그를 배척했다. 일찍 완성된 [지옥] 편은 토스카나 방언으로 씌어 단테 생전에도 꽤 읽혔으나『신곡』은 그가 소천한 후로 차츰 소중함을 인정받았다. 그 선두에 보카치오가 있는데 그가 소개하는 단테 어머니 태몽에 월계수가 나온다.


 이 귀부인은 맑은 시내가 흐르는 푸른 벌판의 큰 월계수 나무 아래서 사내아이를 해산하는 꿈을 꾸었다. 그 아들은 월계수 나무에서 떨어진 열매와 맑은 시냇물만을 먹고서 거의 즉각적으로 목동이 되어 ---


 이어서 보티첼리 등 유명화가들과『신곡』삽화가들이 단테의 초상화를 그릴 때 의례 월계관을 씌웠다. 역사가 흐르면서 단테를 향해 더욱 굵직한 평가가 이어지니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시인철학자로서 유럽근대문학의 시조로 꼽힌다. 서양 문학사에서는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 괴테 등과 함께 우뚝 솟은 봉우리이며.

 앞으로도신곡』을 읽으며 놀라워하는 독자의 마음속에서 단테는 계속 월계관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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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적인 표현들과 인문학적 깊이가 놀라운 책인데, 제가 좋아하는 방식으로만 섭취하였습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 꾸준히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오비디우스『변신이야기』 천병희 옮김, 2005, 도서출판 숲

**『신곡』단테 알리기에리 장편서사시, 귀스타프 도레 그림, 김운찬 옮김, 열린책들 2007

*** 『단테 신곡 강의』 이마미치 도모노부 이영미 옮김, 교유서가 2022 (263 페이지)

**** 보카치오의『단테의 생애』(The Earliest Lives of Dante, tr. by James Robinson Smith. 박우수 옮김. 민음사)


대문 사진:  『단테 신곡 강의』책의 표지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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