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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즈이어 Apr 13. 2023

딸 없는 중년의 슬픔

카페 1953 위드오드리에서

 서울 서남 지역에 사는 고교 동기 넷이 번개 모임을 했다. 동창 모임이 주로 강남에서 열리므로 늘 우리 넷이서 불평을 해왔던 터라 이쪽에 사는 친구끼리라도 한번 보기로 한 것이다.

  5호선 오목교 5번 출구에서 오후 5시에 만나 1시간 정도 영등포 쪽 안양천 벚꽃 길을 걷고서 문래동에서 식사를 하는 일정이었다. 멀리 여의도 까지 갈 것 없다며 가보라 하던 그 길을 처음 걸어 보았다. 벚꽃은 모두 졌으나 나무로 그늘진 길이 걷기 좋았다. 문래동 쪽에 무슨 맛집이 있을까 걱정하는 내게 친구가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거기 창작촌 부근에 골목골목 맛집과 카페가 많아.”

“창작촌?”

 문래동 공장건물이 예술가의 창작의 장소가 되었다가 이제는 그들이 떠나고 음식점과 카페가 되었다고 한다. 십여 년 전 홍대에 인접한 합정동과 상수동에 점점 맛집과 카페가 들어선 것과 비슷하나 보다.

 큰 길가에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친구가 능숙하게 이리로 저리로 하며 길을 앞서니 젊은이들로 붐비는, 구수한 그릴과 베이커리 냄새가 풍기는 비좁은 골목이 나타났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실내 분위기도 산뜻 아늑하고 하와이안 플래터를 하는 웨이브즈라는 곳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우리는 <웨이브즈 플래터> <트러플 머시룸 피자> <블루베리 엔 파인> 칵테일을 시켰는데 모두들 그 맛에 뿅 가고 말았다. (사진을 못 찍은 것이 못내 아쉽다. 여러 블로거들이 이미 올려놓았을 거니까….) 다양한 꿀 맛 아이템이 큰 접시에 한데 모여 있는데 그 가운데는 하와이서만 맛볼 수 있는 귀한 깔루아피그(땅속의 화덕에서 어떤 잎 속에 넣어 오래 숙성시킨 돼지고기)님도 계셨다.

 둘레에 중년 아줌마들이라고는 우리뿐이었는데, 이런 곳을 아는 친구가 경이로웠다.

“넌 어떻게 젊은 애들 오는 이런 곳을 아니?”

“딸이 데리고 다니니까~

  엄마를 신흥 맛집에 데리고 다니는 딸의 착함과 스위트함이라니.

 아! 딸이 없는 나는 얼마나 빈약한 삶을 살고 있는가? 그리 멀지도 않은데 와보지도 못하고. 우리 동네는 학원만 번성하고 도대체 맛 집이라고는 없다고 늘 불평하면서.

 우리의 칭송을 받은 친구는 신이 나서 후식을 위한 카페로 인도했는데…. 이곳이 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카페 1953 위드오드리는 작은 오드리 헵번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었다. 헵번의 팬인 주인이 경매에서 그녀의 옷, 구두, 식기등을 사들였다고 한다. 벽마다 추억의 영화 포스터들이 걸려있고, 구석의 TV에서는 그녀가 출연한 흑백 영화들이 상영되고 있었다. 헵번을 모델로 한 흥미로운 인형들도 벽 하나 가득. 옛 배우인 만큼 이곳엔 중년 커플도 몇 보였다. 일본어 포스터 아래서는 연인처럼 보이는 커플이 일본어로 대화하며.

 헵번의 레스피로 만든 초콜릿 케이크에는 로마의 휴일을 제작한 년도 1953이 적혀 있다. 당도가 적으면서도 구수하고 은은한 맛! 그 풍미에 헵번의 고고함이 실리고 그녀만의 다이어트 비법이 담겨 있는 것도 같다. <로마의 휴일> 영화에서 남녀 주인공이 탔던 것과 같은 브랜드의 스쿠터도 진열되어 있었다.

 옛 향수에 젖어 헵번의 캐릭터를 한참 둘러보았다.

 이런 핫한 장소를 일찍이 향유한 친구가 무척 부러웠다. 헵번을 누구 못지않게 좋아하는 내가 지금껏 이곳을 몰랐다니…. 내향형인 성격 탓이겠지만 왠지 딸이 없어서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나 보다. 아들 둘 주신 것도 무한 감사하건만 딸 없는 서러움이 몰려온다.

어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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