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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즈이어 Apr 16. 2023

내 곁의 라보엠

그들을 응원하며

https://youtu.be/hWLc0J52b2I

샤를 아즈나부르의 샹송 <라보엠>


 아리아 <그대의 찬 손>과 <내 이름은 미미>로 유명한 오페라 <라보엠>만 알고 있다가 샤를 아즈나부르의 샹송 <라보엠>을 듣고서는 이 노래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두 가지 모두 가난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보헤미안 스타일의) 예술가들 이야기인데 샹송의 가사가 더 깊숙이 다가온다.

 사실 그 샹송을 좋아하는 건지 가수 아즈나부르를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는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허공의 캔버스에 데생을 하고 물감을 묻혀 색을 입히고, 그 그림을 고치기도 하며 노래한다.

 그러니 20세 몽마르트르의 어떤 젊은 예술가를 떠올리다가, 이틀에 한번 먹었다는 배고픔의 고백에 애처로워하다가, 문득 아즈나부르 자신의 이야기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작사 작곡을 직접 했기 때문에)

 라 보엠 (La Bohème)의 세계가 처절하건만 공부만 한 범생에게는 얼마나 멋지게 다가오는지.

 샹송 <라보엠>이나 오페라 <라보엠>이나 배경이 프랑스 파리이기 때문에 한동안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곳의 시인과 화가를 생각했었다. 그런데 요사이 둘레에서 그 곡을 떠올리는 라보엠들이 생겼다.

 첫 번째는 브런치 마을에서 만난 <그때 그곳 옥탑방 화실>의 등장인물들이다. 아즈나부르의 노래 분위기와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스토리의 열렬 독자가 되었다.

 두 번째는 미국에서 중년에 화가의 길을 가고 있는 내 동생이다. 그림만 그리고 싶었지만 남편을 여의고 생계의 현장으로 나가 한동안 일을 했다. 얼마 전 직장을 그만두고 온전한 화가의 길을 시작하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나는 언니로서 여러 가지 계산이 앞서나 정작 자신은 체력 걱정 외에는 행복하다. 샹송 <라보엠>에서 처럼 젊은 나이는 아니지만 캔버스에서 예술 혼의 불씨를 키워가 동일하게 멋져 보인다. 자유로운 영혼의 보헤미언으로 세속의 범생은 가보지 못한 구름 위의 세계를 노니는 모습이다.



타이틀의 배경 그림  by Sarah Po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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