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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즈이어 Apr 19. 2023

이런 파티 어때요?

불협화음 화음의 선율이 흐르던

 5년 가까이 참석해 오던(많이 빠지기도 하면서) 52회 차 독서모임이 있던 날이다. 존경하는 선생님이 오신다니 더욱 설레는 걸음이다.

 가는 길 창밖으로 인왕산의 풍성한 녹음도 설렘을 부추긴다. 아기초록부터 좀 더 진한 색까지 어느덧 울창해졌다. 그런데 웬 미세먼지 조심하라는 방송이 들린다. 명한 연녹색 녹음과 미세먼지라…. 불협화음처럼 도대체 어울리지 않은 한 쌍이다.

 뭔가 어울리지 않는 것은 우리 모임 장소도 그렇다. 한약재 냄새가 가득한 제기동 약령시장 한복판을(과장을 하자면 구한말 분위기가 풍기는) 한참 걷다 보면 지적으로 꽤 세련된 모임이 열리는 작은 도서관이 나온다.

 우리 독서 모임 처음 이름에 글놀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었으니 파티로 소개해도 될 성싶다. 파티에 빠질 수 없는 맛있는 간식과 음료도 준비되니까.

 오늘의 주인공은 주황색 방울토마토, 추억의 단팥빵, 옥수수, 메이플 쉬폰케이크, 시원한 식혜와 각종 꽃차 등등. 저녁에 만났다면 그윽한 와인도 있었을 것이다.

 어느 때는 수준 높은 소프라노 아리아도, 년 말에는 우쿨렐레 선율이 흐르기도 한다.

 왁자지껄 즐거운 안부 담소 후 202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여류작가 아니 에르노의『단순한 열정』토론이 시작되다. 모두들 처음엔 저자의 사랑에 불편했다는 심경을 토로하자 특별 출연한 선생님 말씀.

“우리에겐 남녀 칠세 부동석의 피가 흐르지.”      

 발표하신 Lee 선생님 발제문 가운데.   

  

 “지금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다면 그건 행운이지. 하지만 그 행운을 붙잡을 용기가 없다는 게 슬픈 거지.”

  그때 우리들 나이가 사십이 가까울 즈음이었을까. 다들 고만고만한 남편을 두고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키우며 인생에 대해 약간의 무료함을 느끼고 있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다면 필연적으로 불륜으로 불릴 수밖에 없는 일을 행운이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좀 젊은 샘들 멘트 중 기억에 남는 것.

“스스로 솔직한 연애를 못해 보았다는(감정을 솔직하게 표현 못하고 지나가버린) 느낌이 들었다.”

“저자는 연애과정을 오버 안 하고 참으로 담백하게 풀어놓았다”

“사랑을 많이 저질러 놓아 그 책임 수습하느라 바쁘다. 세 아이가 모두 대학에 간다면 나 스스로의 삶을 계획해 보고 싶다.”

“한 줄 평을 하자면 포르노 아니(No) 愛르노~”    

 

또 모임을 인도하시는 Jee 선생님의 보충 발제 글에서.   

  

꽃은 자기의 색깔을 정성껏 고르고 옷을 찬란히 입고 꽃잎을 하나하나 가다듬었다. 꽃은 개양귀비처럼 헝클어진 모습으로 나타나기가 싫었던 것이다. 그 아름다움이 극치에 다 달았을 때 나타나고 싶었던 것이다. 아! 그래, 무척 교태를 부리는 꽃이었다. 그렇게 그 신비스러운 화장이 며칠씩 계속되었다. 그러더니 어느 날 아침 해가 뜰 무렵 그 꽃은 얼굴을 드러냈다.(함미경역의『 어린 왕자』에서)     

  이 정도로 자의식이 강한 꽃이라면 아니 에르노가 쏟아낸 단순한 열정을 닮은 감성으로 별을 떠난 어린 왕자를 기다리지 않았을까? 어린 왕자의 언어가 정제된 순수함이라면 아니 에르노의 언어는 원초적이다.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과 어린 왕자의 장미꽃이라…. 이 또한 낯선 조합이지만 아름답게 느껴진다. 어쨌든 우리 모두는 마지막에 그녀의 문학성을 이해하고 글쓰기 스승임과 노벨 문학상에 합당함을 인정했다.

 수업의 끝 무렵 자신을 위해 삶을 꾸려 보겠다고 했던 급우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아까 얘기했던, 아이들 대학 보내고 자신만을 위해 사는 플랜 중에 연애도 포함되나요?”

아! 그런데 이런 대답이 돌아올 줄은.

“제가 사랑을 꽃피우고 싶은 대상은 친정 부모님에요. 팔십이 가까워가는 그분들을 한 지붕 아래 모시고 조건 없이 받기만 했던 사랑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연애와 글쓰기 수업에 웬 효도 이야기? 가장 큰 불협화음이다. 그만 눈물이 핑.

 어느 때 인가부터 불협화음 화음의 멜로디가 으뜸인 것을 깨달았었다.

 아름다운 불협화음 선율이 흐르던 날, 이 기억을 남기기 위해 더 선명하게 하기 위해- 오늘 선생님 말씀처럼-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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