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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즈이어 Apr 29. 2023

뒤늦게 깨달은 사랑 (2)

<사랑 손님과 어머니> 스토리 비슷한 

 열아홉에 결혼해서 두 돌 박이 사내아이를 거느린 스물셋의 새댁은 자신의 집에 세 들어 사는 노처녀들의 수다를 들었다. 젊은 장교 한 사람이 건넌방을 보러 왔다는 것이다. 전역을 앞둔 라소위라는 사람이 몇 달간의 출장 근무를 위해 하숙 식구에 합류했다. 

 라소위는 훈남에 초콜릿 냄새가 나는 향수를 뿌리고 다녔다. 피엑스에서 귀한 군대 물품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험한 집안일을 돕기도 해서 새댁은 늘 라소위가 고마웠다. 그의 부드러운 성품은 말단 경찰로 거칠기만 한 남편과 비교되었다.

 두 노처녀들은 노골적으로 라소위 둘레를 맴돌았지만 그는 거들 떠 보지도 않았다. 새댁도 라소위가 멋져 보여 처녀를 여럿 물색해서 소개했지만 번번이 퇴짜였다. 라소위가 가져다주는 물품들이 점점 많아지고 고급스러워졌다. 새댁은 고맙기 그지없는데 철없는 남편은 점점 못 마땅해했다. 어느 날 남편은 괜히 꼬투리를 잡더니 화를 내며 귀한 미제 찻잔을 깨부수었다. 

 라소위도 남편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밤 라소위와 노처녀 중 한 사람이 12시가 넘도록 귀가하지 않았다. 새댁이 새벽에 일어나 보니 노처녀는 돌아왔고 라소위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아침 식사 때 그 노처녀는 매우 의기양양했고 그녀에게서 초콜릿 향수 냄새가 풍겼다. 그 후로 라소위는 무슨 일로 바쁜 듯했고 새댁에게 별 말이 없었다.  

 어느 날 라소위는 하숙 식구 누구와도 아무 인사 없이 장문의 편지를 남기고 사라졌다. 새댁 부부는 함께 편지를 읽었는데 미국으로 떠난다는 내용 말고는 도대체 글의 요점을 알 수 없었다. 읽고 또 읽어도 해독이 어려웠다. 그 후 새댁은 자주 라소위 생각을 했다. 힘든 집안일을 만날 때, 종종 폭력을 쓰는 남편이 미울 때 더욱 생각났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안개가 걷히듯 뭔가가 명확해지고, 얼마 후 새댁은 모든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사랑이라는 표현이 하나도 담겨 있지 않았으나 그 편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별을 고하는 글이었음을. 부부에게 남긴 편지였기에 횡설수설 논지가 약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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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받는 짝사랑이 고마움을 넘어 한 사람의 인생에 따뜻한 볕이 된 사연이다.  

 고교시절, 다리미가 하얀 천위에서 모락모락 김을 피워내고 곁에 딸이 있으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주인공을 소환했다. 자신을 짝사랑했던 젊은 장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슬픔을 가지고 떠난 라소위를. 

 이분 이야기를 딸들에게 번갈아 가며 자주 들려주었으므로 우리는 그 스토리를 거의 외고 있다.

 마치 램프의 먼지를 문질러 거인을 불러내는 알라딘이나, 4차원을 재생해서 잃은 아들을 바라보는 탐 크루즈와 흡사했다. (영화 <마이노러티 리포트>에서) 

 연기(煙氣) 끝자락에 모습을 드러낸 주인공은 바람피운 아버지를 척척 무찔러 주기도 하고, 일곱 아이 줄줄 매달려 로맨스라고는 없는 현실에 몽상의 사랑을 선물하기도 했다.

 라소위는 미국에서 아마도 자신과 비슷하게 훌륭한 어느 여성과 결혼했을 것이다. 가끔 젊었을 적 광주 새댁을 떠올렸으리라. 그러나 자신이 차마 사랑이라 이름 짓지 못했던 그 순수한 마음이 스스로 꽃 피워 열매 맺히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척박한 인생살이를 하면서 가끔 꺼내 먹으며 위로받는 달콤한 과실이 되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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