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택배, <백수 스코틀랜드 여행기> 댓글 픽션
인구 10만 브런치 나라에서 살롱드 아무말 리(里)는 다른 고장에 비해 인구수가 적은 편이다. 하지만 주민들의 정(情)이 많기로, 또 오가는 대화가 꿀잼이 뚝뚝 흐르는 것으로 은근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사람에게 숫자 나이라는 것이 큰 의미가 없듯, 이 나라에서도 수(數)라는 것은 필력이나 재미와 무관하다.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는 이 마을에서 늦은 오후 택배기사가 담장을 기웃거리자 주민들은 철쭉향을 가르며 새 나오는 어떤 파동을 감지했다.
영국에서 온 페덱스 우편물과 한아름의 장미 다발을 배달받은 오늘의 주인공은 이 마을 이장(里長)인 마봉 작가님. 그녀는 표정 관리를 해야 했다. 이국(異國)에서 온 뭔 기별보다 오히려 장미꽃 때문에 흔들리는 마음을. 등심과 같은 무늬의 스트라이프 장미라니!
"개인적으로 꽃등심 장미꽃이 가장 보기 좋네요." *
이것을 보내온 그 누군가는 4월 22일 <꽃보다 등심>이라는 글에서 자신이 이렇게 고백한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뜻 아닌가? 좀 으스스했지만 0.5초 만에 마음을 추슬렀다. 명색이 이제 할만하다며 호기롭게 고딕 소설 번역을 올리고 있는 시점이라.
'설명할 수 없는 초 자연적인--' 무서운 고딕 소설은 자신의 생리가 아니지만, '설명 가능한 초자연--', '조용하고 기묘하게 일상의 틈새를 파고드는 공포--'를 다루는, '이 언니가 글을 잘 써서 읽다 보니 홀린 듯이--' 마거릿 올리펀트와 친하게 되었노라고 고백한 게 엊그제였다. **
스코틀랜드 던로빈 성(城) 관리자에게서 온 여러 소책자들은 얼마 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지난 4월 25일 <백수 스코틀랜드 여행기>에서 던로빈 성(Dunrobin Castle)을 소개하고 글벗의 대댓글에 답을 한 적이 있다.
"서덜랜드 백작 인스타 아이디 찾으면 디엠 보내 보려고 합니다." (예쁜 방을 좀 가질 수 있는지 묻기 위해, 귀신 나오는 방에서 먼 곳으로다가.)
유명인사들은 보통 개인 인스타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성(城)의 공식 계정을 찾아보리라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을 때, 돌연 그곳 @dunrobin_castle로부터 디엠을 받았다. 이 때는 전혀 놀라지 않은 것이 자신의 큰 갈망이 낳은, 융 심리학에서 말하는 일종의 동시성(Synchronicity) 일거라 생각해서였다.
"브런치 나라에 저희 성을(城) 소개해 주신 귀하의 노고에 감사합니다. 메일을 알려 주시면 더욱 자세한 정보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알려 준 메일로 날아온 내용에는 별게 없었다.
"빠른 응답 감사합니다. 댁 주소를 알려주시면 던로빈 성에 대한 상세한 자료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제는 주소까지? 잠시 망설여졌으나 이미 핸드폰 번호고 주소고 쿠팡에 모두 털린 것이 떠올랐다. 더구나 그곳 메일은 홈페이지에 나온 그대로였다.
두꺼운 페덱스 껍질을 뜯으니 던로빈 성의 우아함을 담아낸 브로셔와 여러 장의 포스트카드가 쏟아졌다. 부속 뮤지엄에서 판매하는 듯한 성(城) 스케치와 에코백도 담겨 있었다.
'여러 해 전(前) 방문했을 때는 기념품 가게 못 보았는데…'
'내 글이 그리 홍보에 기여했나?'
고맙고 반가운 마음으로 하나 하나 확인하는데, 책자 사이에서 툭 하며 금빛 문양의 편지 봉투가 떨어졌다.
마봉 작가님께,
직접 만나서 긴히 상의할 일이 있습니다. 비행 편과 던로빈 성에서의 3박을 마련하오니 부디 방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고로 숙박하실 방이 있는 성채는 귀신 나오는 방과 무관합니다.
P.S. 이 편지는 둘레 사람들에게 비밀에 부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백작실 수석 비서, 던컨 로버트슨 드림
편지의 발신인이 성(城) 관리소장이 아니라니! 그러고 보니 던로빈 성과 관련된 다양한 득템들은 이 메시지를 보호하기 위한 도구인 듯싶었다. 설렘과 호기심에 마음이 일렁거렸다.
'갑작스레 휴가를 어떻게 낸담?'
'친지들에겐 어떻게 설명하고?'
'이렇게 좋은 일은 뭔가 의심해야 하지 않나?'
온갖 경우의 수가 필름처럼 빠르게 지나갈 때, P 형 인간이 단박에 실행에 옮길 수밖에 없는 미끼가 나타났다. 다름 아닌 대한항공 런던행 1등석 (first class) 티켓. 이 녀석은 수려한 던로빈 성에서의 숙박 보다도 더 강렬하게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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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봉 작가님 4월 22일 <꽃보다 등심>에서
** 마봉 작가님 4월 24일 <안개와 유령의 미학: 고딕 소설>에서
## 마봉 작가님 <백수 스코틀랜드 여행기> 28 편을 읽고 적어 본 댓글 픽션입니다. 많은 내용과 표현들을 거기서 빌렸습니다.
https://brunch.co.kr/@mabon-de-foret/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