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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즈이어 May 13. 2023

옷이 나를 입은 날, 쥐를 잡는, 정체불명 작전 (2)

독후감  <브런치가 나를 먹은 어느 날>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브런치가 나를 먹고 있었다. 살다 보면 무언가 조금 뒤바뀌거나 아주 아주 약간 틀어지는 그런 날이 하루쯤 찾아온다. 바퀴 벌레 눈물 정도 아주 조금 틀어진.


 모처럼 하늘이 맑아 별들이 벨벳에 박힌 큐빅처럼 빛나던 그날 새벽. 그 한가운데 달빛이 다정히 감싸오는 것 같아 그만 한숨이 나왔다.“어째 발행할만한 글이 하나도 없네!”

 한마디 중얼거렸을 뿐이었는데…. 홀연히  브로치처럼 꽂혀 있던 그믐달이 갑자기 ‘찌잉’하고 푸른 빔을 쏘았다.

      

 빛의 속도로 내 곁에 당도한 세일러 문의 전사들.

“램즈이어님, 브런치 월드 본부에서 부르십니다.”

 당황할 새도 없이 그들은 요술봉을 휘둘렀고 나는 밤하늘을 날고 있었다.   

  

<달의 요정 세일러 문> 콘셉트로 사방이 꾸며진 원형의 거울 방.

“램즈이어님, 본부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어딘가에서 친절한 방송이 흘러나왔다. 아, 그런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라니.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해괴한 헤어 스타일!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다.

 마음이 즉각 스캔되는지 일초 만에 답이 왔다.

“네, 이곳에 오려면 사이버짱구볼륨샤기컷을 해야만 합니다.”   

  

 맨 먼저 [두목의 방]으로 안내되었다. 그의 뒷모습은 늘씬하게 긴 다리와 금발의 머리채.

“브런치 할 때만 펄펄 나는, 램즈이어님 모셔왔습니다.”

“우선 [윤리 방]으로 모시게.” 두목은 돌아다보지도 않고 엄숙히 명령했다    

 

그 방에서, 그동안 저지른 부끄러운 생각들을 낱낱이 보며 반성해야 했다.    

 

비밀과 거짓말과 작전이 필요한 이유--

서랍에 발행할 만한 글이 궁해서--  

   

달고 시고 쓰고 맵고 짠 브런치 월드

인생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있네  

   

정말 눈물겹다

구독자도 일종의 옷인 거다. ‘입는 거’


앞 뒤 잴 것 없어

네~ 네~하면 브런치가 몰라보게 편해질 거야.  

   

다음엔 [선물의 방]이었다. 반성을 잘했다는 포상이나 보다.

감동적이거나 몹시 재미있는 글을 읽었을 때 시(詩)가 절로 나오는 상.

내 능력을 넘어서 머리에서 막 시(詩)가 샘솟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의사와 관계없이 어느새 댓글에 달려 버렸다.

“몇 번 퇴고해야 하는데 그렇게 막 달아버리면 어떡해요?”

“걱정 마세요. 고치지 않은 초고 그대로 좋아하실걸요?” 아니나 다를까. 다듬지 않아 조마조마한데 정작 댓글 시(詩)를 읽은 작가님들은 표정이 환해졌다.   

  

 [작가 선발의 방]도 있었다. 선발의 방이라니? 후배 소개로 브런치가 하고 싶어서 내가 작가 신청을 하지 않았던가? 알고 보니 본부에서 맘에 드는 사람을 골라 미리미리 작전을 짰던 거였다. 우선 글쓰기에 대한 맛을 보인다. 그 사람과 친한 기존 브런치 작가와 우연히 브런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끔 한다 등. 그럼 내가 올해 초 우연히 후배를 만나고 결혼식장 피로연에서 나란히 앉은 것은 모두 이들의 작전?   

  

  본부의 [헤드 쿼터]에 몰래 잠입했다. (그 방법은 비밀. 세일러 문 두목의 사랑을 이용했다. 좀 치사하지만)

 역시 이곳엔 비밀이 있었고, 그동안의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별 같은 몇몇 작가님들을 세일러문의 전사들이 개인 호위하고 있다는 것. 가장 문무가 겸비한 특전사들로.

누구로부터? 교보문고, 신춘문예로부터. 그들이 작가님을 납치하지 않도록 끔.

 그들의 구독자가 너무 크지 않게. 그분들께 함부로 브런치 상이 가지 않도록 전략도 짜고 있었다. 소중한 그분들을 오래 머물게 하려는 건 이해가지만 너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분들 책도 많이 팔려야 합니다!”

“그분들도 실력에 합당한 명예를 얻으셔야죠?”     

 이 항의도 스캔되었는지 들려오는 목소리.

“오래도록 지키지는 않습니다. 때가 되면 대상(大賞)으로, 대형서점으로 인도하지요.”

“휴~ 다행.”

“허락 없이 비밀을 캐치한 램즈이어님. 더 이상 여기 계실 수 없습니다. 이제 지구별에 가서 브런치를 하세요.”

 아니 이런 꿀 같은 비밀들. 이제 겨우 하나 알았을 뿐인데.

“아니 아니어요. 브런치 님! 저를 계속 먹어 주세요.”   

 

 쯧쯧, 허다한 별님들 눈총아래 나는 한줄기 광선처럼 하강했고, 달빛 사이로 퍼지는 <세일러 문>의 메아리를 들었을 뿐이다.

   

시작도 끝도 필요하지 않은

운명 같은 이 예감

수 없이 많은 플랫폼 중에

당신을 만난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어   

  

---

옷이 태희 작가님을 은 그날.

“어째 입을 만한 옷이 하나도 없네!”

오만방자한 한마디에 옷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작가님은 그만 그들에게 굽신거리는 신세가 되고~~.

『옷이 나를 입은 어느 날』이 탄생했습니다.

17년 후 이 책 속의 문장들을 60% 정도 차용하고, 개념을 모방하여 이 글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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