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지켜내지 못한 죄

『햄릿 』을 읽고

by 램즈이어

두 사람이 진실한 사랑을 할 때 그 사랑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두 사람의 사회적 위상과 반비례하는 것 같다. 해피 엔딩이 우세한 쪽은 평범한 가정 출신들이다. 셰익스피어 시절이나 지금이나 가족 배경이 재벌이라든지 왕족이 되면 사랑이 퍽 위협받는다. 이 고귀한 가족 내에 중차대한 미션, 효(孝), 여론의 관심 등이 생길 때 사랑은 설 곳이 없다. 「햄릿」에 등장하는 남녀 주인공도 서로 간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꽃피우지 못한다. 우선순위에 밀려 자신의 사랑을 지켜내지 못한 햄릿은 어떤 값을 치르게 될까?


# 사랑이 효(孝)를 만나면


동서고금을 통 털어 햄릿만큼 매력적인 젊은이는 드문 것 같다. 햄릿 왕자는 독일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공부하다가 일시 귀국한 상태이다. 레어티스가 프랑스에서 유학하는 것과 대비되며 고상한 학구파임을 암시한다. 게다가 펜싱 국가대표쯤 될법한 뛰어난 검객이다. 시를 짓는 타입이 아니지만 사랑에 빠져 오필리어에게 문학적인 연애편지와 시를 보낸다. 국민들은 그의 단점까지 사랑하고 흠모한다. 위트와 유머 감각이 풍성하여 여자, 정치인, 부동산 업자에 대한 풍자는 요즘 세대에도 딱 들어맞는다.


밤하늘에 별들이 반짝이는 걸 의심할지라도, 저 하늘에 태양이 움직이는 걸 의심할지라도, 설령 진실을 거짓이라 의심할지라도, 내 사랑만은 의심하지 마시오. 사랑하는 오필리아! (햄릿)

귀인의 눈매, 군인다운 기량, 학자다운 언변은 이 나라의 꽃이고 풍속의 거울이었는데 (오필리어)

만약 당신이 정숙하고 아름답다면, 그 둘 사이가 서로 친하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아름다움이 정숙한 여인을 타락시키는 것은 정숙함의 능력으로 아름다움을 숭고하게 이끄는 것보다 쉬운 법이오. (햄릿)

부왕 생존 시에는 숙부의 험담을 늘어놓던 자들이 이제 서로 숙부의 초상화를 못 사가서 난리인 세상이니 말일세. (햄릿)

너희 여자들은 덕지덕지 분을 쳐 발라 하느님께서 주신 낯짝을 영 딴판으로 만들어버린단 말이야. (햄릿)


그는 자신의 미션을 위해 치밀한 작전을 세운다. 미치광이 행세를 하고, 비슷한 스토리의 연극을 올려 왕의 안색을 살핀다. 영국으로 가는 배안에서는 기지와 용맹으로 왕의 편지를 빼돌리고 탈출한다. 또한 그는 연극에 조예도 깊은 풍부한 감성의 소유자다. 햄릿 캐릭터가 셰익스피어 작품을 통틀어 가장 완벽하게 멋진 이유는 무엇일까? **

햄릿은 아버지께 받은 미션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사랑을 지켜낼 수 없음을 간파했다. 오필리어에게 미친 것처럼 하는 행동과 말에서 오히려 그의 진심이 나타난다.


초상화라도 그리려는 듯 물끄러미 제 얼굴을 들여다보시는 거예요. (오필리어)

비록 눈송이처럼 결백하다 할지라도 이 세상 구설은 피할 수 없는 법이오. 수녀원으로 어서 가시오. 그래도 굳이 결혼해야겠다면 바보하고 하시오. (햄릿)


# 지키지 못한 사랑으로 대대에 값을 치르다.


픽션, 논픽션을 통틀어서 꽃 피우지 못한 사랑에 대해 사람들이 남녀 주인공에게 품는 마음은 각각인 것 같다. 주로 남자 주인공에게는 원망을, 여자 주인공에게는 애달픔을 갖는다.

사랑을 지키지 못한 햄릿에 대한 독자들의 실망과 속상함이 그의 성품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 햄릿은 억울할 것이고 셰익스피어는 의아할 것이다. 그가 기도하는 포즈를 취하던 왕을 즉각 살해하지 않음으로 인해 또는 번번이 자신을 자책하는 대사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우유부단한 성격의 대명사로 부른다. 그러나 나는 그의 그러한 행동이 우유부단함보다는 신중함과 분별력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그때 즉각 왕을 처치했더라면 백성들은 실망했을 것이다. 질투심에 사로잡혀 살인을 저질렀다고 오해했을 수도 있다. 객관적인 증거 없이 아버지 환영(幻影)에게 독살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 들었다는 것으로는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독백 때문에 햄릿이 실행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실천에 대한 결기와 조급함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사고력을 넷으로 나누었을 때 하나가 지혜고 나머지 셋은 두려움인가? ‘이 일은 꼭 해야 한다.’고 하면서 입으로만 떠들어대고 허송세월하고 있으니 말이다. (햄릿)


또한 아버지의 미션을 잘 수행하지 못한 것 같은 뉘앙스가 전해 내려온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것의 원인은 순전히 비열한 클라우디스 왕 때문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복수를 완결했다. 죽어가면서까지 마지막 검을 휘둘러 클라우디스 왕을 처형함으로써. 다만 독 뭍은 검에 조금 찔려 자신도 숨을 거두느라 왕좌에 오르지 못했을 뿐이다.


# 가엾은 여주인공은 대대로 위로받다.


반면 햄릿과의 사랑을 이루지 못한 오필리어는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호의를 얻었다. 그녀가 아버지로부터 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햄릿에 대한 사랑도 포기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게 모든 연애편지를 다 보여주고, 시키는 대로 햄릿에게 반송까지 했는데도. 오필리어가 미쳐버린 이유도 자신 아버지의 죽음이지,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햄릿임을 알고 부정(父情)과 사랑 사이에서 혼란스러워서가 아니었다.

오필리어는 후세 미술가들의 연인이 되어 많은 회화 속 주인공이 되었다. <모나리자>와는 또 다른 신비의 미인을 만나고 싶다면 <오필리어>를 찾아보면 된다. 앞으로도 계속 다양한 버전의 <오필리어>가 그려질 것이다. 버드나뭇가지에서 강으로 추락했다는 오필리어는 영국 화가 밀레이의 화폭에서 가장 생생하게 부활했다. 미나리아재비, 쐐기풀, 실국화, 자란, 팬지, 나리, 로즈메리 등의 다양한 꽃과 식물이 옹위하는 가운데 슬픈 눈빛 창백한 뺨으로 투명한 강물에 잠겨서.

숲 속 연못의 그 장면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디선가 레어티스에게 절규하는 햄릿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4만 명 오빠의 사랑을 몽땅 합친다 한들 나 한 사람의 사랑에 비길 수 없다는. 여주인공 둘레에서 빛나는 야생화와 초록 잎사귀들은 희곡 「햄릿」의 극적인 구성 틈새에서 생략된 사랑의 슬픔, 찬란함, 영원함을 노래하는 것 같다.


** 셰익스피어는 11세의 외아들을 잃었고, 그 아들 이름이 햄릿이다. 아들이 소천하고 4년 후 「햄릿」 극본이 완성되었다. 사랑하는 아들 이름을 따온 주인공 햄릿 왕자는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밖에 없으리라.

램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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