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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즈이어 May 30. 2023

백 투더 퓨쳐

독후감 <그때 그곳 옥탑방 화실>을 읽고

이로선 작가님 1인칭 시점으


 브런치 북 <그때 그곳 옥탑 방 화실>이 출간된 날 회사 점심시간을 이용해 열심히 댓글을 체크하고 있었다. 답 글을 달다가 깜박 졸고 있는데 동료가 내 어깨를 흔들며, “누가 찾아오셨어요” 하고 카드를 한 장 건넸다.

카드에는 “작가님 출판 기념 선물입니다”라고 적혀있었다.

‘란(蘭)이 오려나?’

 뒤이어 성큼성큼 들어오는 사람은 화분도 들지 않았고, 배달기사로 보기엔 곱실거리는 흰머리 노인이다.

“이(李) 작가, 시간 없네. 서둘러주게.”

“누구신지요?”

“나? 얼굴 보고도 모르겠나? 이 브라운 박사를.”

 그는 가방에서 어떤 장치를 꺼내 조립하더니 미니 자동차처럼 생긴 좌석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어서 타게나. 요즈음은 사이즈가 매우 작아졌어.”

“예?”

“타임머신 드로리안이야. 30년 전으로 돌아가게 될 거야.”

“아니? 마음의 준비도 안 됐는데….”

 당황할 겨를도 없이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하늘을 날고 있었고 박사님의 마지막 목소리만 멀리서 메아리쳤다.

“딱 한 시간 만이야.”

---

 눈 깜짝할 새 그 옛적, 하늘과 가장 가까운 옥탑방 화실에 도착했다. 슬프고 정겨운 그 누추한 방. 그곳에서 나를 처음 영접한 이는 등에 흰색 별 문장(紋章)을 단, 장수하늘소 풍채의 위풍당당한 ‘별’이었다.

 서로 애환을 주고받았던 희귀한 생물체, 박테리아 인간과 바퀴벌레의 해후. 멕시코 민요 <라쿠카라차>가 흘렀다.

“너 별이 맞지?”

“화가님!”

우리는 영화 장면처럼 서로 부둥켜안았다. 별이는 눈물을 글썽였다.

“나 요새 화가 아니고 작가야.”

“암튼요.”

“이 꼬마 건물주 녀석. 요샌 조물주 위에 건물주래~”

“네?”

“아니, 넌 그런 거 몰라도 돼.”

“이젠 콘텐주 라는데요?”

“뭐? 녀석 이제 다 컸네. 하여튼 몸서리치며 외로웠을 때 달래주어 고마웠어.”

“착각은 자유죠. 이 엄살쟁이~ 하며 놀렸었는데?” 별이는 머리를 긁적였다.

“난 너를 동지로…. 내 곁에서 유유자적 반짝일 때….”

“여긴 이제 보니 거장 예술가의 산실(産室)이었어요. 내가 봐서 아니다 치면 첫날 내쫓었는데. 징그러운 표정 지어서 꺅하고 도망가게. 이래 봬도 사람 보는 안목이 있었다니까요.”

“처음 눈 맞췄을 때 더듬이 움직이며 수줍어하던 녀석이….”

“수줍어한 게 아니라 화가님 관상 테스트 한 . 그나저나 뭐가 되셨어요? 무슨 작가?”

“주식회사에 다니고 글을 쓰지. 브런치 작가야.”

“흐음~ 어느 세입자는 노벨문학상 타 가지고 돌아왔는데….”

“나도 브런치에서 꽤 인기 있는 작가야! 열혈팬도 있어.”

“하여튼 엄살이 심했다니까요. 더 외로웠어야 했는데…. 그 노벨상 작가님은 더 가난했고 더 죽을 만큼 외로웠단 말에요!”

 분명히 루저들의 성(城)을 하나씩 다스리고 있는 성주(城主)들이 모였었는데 훗날 성공한 사람이 있었다니 신기했다. 회사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여기 와서 이 녀석 핀잔까지 받나 하고 배신감 비슷한 것을 느끼며,

 ‘나도 봄감기 걸려서 거의 죽을 뻔했어’하고 대꾸하려는데 어디선가 낯익은 낭랑한 소녀 목소리가 들렸다.

 “야! 화가님 그렇게 오래 붙들고 있을 거야? 시간 없으시거든!”

 늘씬한 키, 빛나는 원색의 금발, 새까만 눈, 소피아 로렌이다. 다시 한번 감격의 재회, 얼싸안고 울고불고.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열대야 시절처럼 로렌과 나란히 섰다.

 “작가님! 그때 그 포즈로~”

 소피아 로렌의 잔소리에 군소리 없이 순종했다. 어느샌가 맨드라미, 채송화 녀석도 나타났다. 일렬종대로 입을 벌리고 물줄기를 먹으며 비를 맞았다. 줄기차게 내리는 빗물에 눈물이 함께 씻겨갔다. 이번엔 재상봉 기쁨의 눈물로.

 비가 점점 눈비 비슷하게 되더니 진눈깨비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야, 소피아 로렌 비켜 비켜. 작가님 시간 없으셔.”

 눈사람 셋이 나타났다. 두 명은 사나운 표정, 한 명은 온순한 표정. 그들은 팔레트와 유화물감과 한 뭉치의 붓을 등에 고 있다. 비가 완전히 눈으로 변하자 꽃들이 퇴장하고 큰 송이눈이 팡팡 내린다. 아, 그리웠던 샤갈의 눈 내리는 옥탑방!

 나는 눈사람 남매가 가져온 도구들로 그림을 그린다. 내가 정말 그리고 싶은 그림. 밝은 톤이고 뭐고 생각 안 하고, 돈 되는 것이고 뭐고 다 무시하고. 진정 내가 그리고 싶었던 그림을.

 연탄난로 위 주전자도 보리차 냄새를 풍기며 어깨를 들썩인다.

 이따금 함박눈 내리는 창을 바라본다. 봐자(字) 돌림 두 남매도 나를 훔쳐보고 있다. 의문이 생긴다.

 창가에 가서 큰소리로 말을 건넨다.

“야! 너희 ‘뭘 봐’ ‘안 봐’ 남매 둘 아니었어? 저 작은 녀석은 누구야?”

“저희 동생 봤어요. 재는 착해요. 이름은 ‘나 좀 봐’ 에요.”

 나는 계속 그린다. 이러다가는 샤갈 이상의 작품이 나올듯하다. 완성을 향해 가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지지 지직.

“여기는 서울, 이(李) 작가 나와라 오버.”

“네, 박사님. 덕분에…. 이렇게….”

“5분 후 귀환이다. 준비~” 구석에서 귀신처럼 별이 나타났다. 내가 돌아가는 것을 알아채고 안절부절 긴장하는 눈치다.

“예? 벌써 시간이 …. 죄송하지만 돌아가는 길에 목련여인숙 205호 한 번만 볼 수 있을까요?”

“음, 창공에서만 볼 수 있겠어. 거기선 천천히 지나갈게.”     

 목련 여인숙 뜰엔 역시나 장미꽃만 가득, 예나 지금이나 목련이라곤 없다. 간판 옆에 작은 글씨로 뭔가 새로운 팻말이 보인다.

‘뜨거운 물 나옵니다.’     

 천사의 그림자가 얼핏 보이는가 싶더니 가브리엘 포레의 첼로 곡 <꿈꾼 후>가 들린다. 분명 그때 그 곡인데 다른 멜로디가 흐르는 느낌이다. 나도 분명 지금 꿈을 꾸고 있어. 이후론 어떻게 될까?

---

쿵.

타임머신이 나를 뒤집어서 땅에 박았다. 기계는 저 멀리 튕겨 나간다. 에고, 이렇게 되면 내 머리가 박살이 나는데….

 안개가 걷히듯 시야가 점점 맑아 온다. 푸른 초장(草場) 이 펼쳐있다. 천국에 온 것인가? 나무들도 보이고 벤치에 앉은 사람들도 보인다.

'서울의 어느 공원에 데려다 놓으셨나?'

 멀리서 유치원생들 한 떼가 다가오더니 삼삼 오오 흩어진다. 소풍을 나왔나? 두 아이가 바로 앞에 앉는다. 분명 아이들인데 크기가 거인처럼 느껴진다. 그림일기가 펼쳐 있다. 2060년 5월 30일.

"앗! 분명 2023년에 떠났는데?"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글쎄 말이에요. 하여튼 박사님은 덤벙대신다니까요. 버튼을 37년이나 틀리게 누르시고!"

 옆에서 앙증맞은 민들레 한송이도 외친다.

"넌 누구야?"

"별."

"너, 나 몰래 탔구나?"

 "날 끝까지 지켜 준다는 사람은 누군데요?"

 "옥탑방 벗어날 거면 그 노벨상 작가랑 함께 가지 그랬어? 나 같이 별 볼 일 없는 사람 말고."

"별 볼일 없다고요? 작가님은 자신이 누군지 모르세요?"

"모르긴. 인기 브런치 작가지."

"아~ 정말 모르시네. 하긴 여긴 2060년이니까. 바퀴벌레 특별교신이라는 게 있는데요. 작가님은…. 그러니까 이 풀꽃으로 태어나기 전에…, 뭐가 되셨냐 하면 …. 노벨상 작가도 부럽지 않은 …."

"뭐어?"

우리가 실랑이를 하는데 두 아이가 감탄 어린 눈으로 점점 다가온다.

"야아! 이 민들레 꽃들 넘 예쁘다. 우리 꺾어서 꽃반지 만들자~."

---


## <그때 그곳 옥탑방 화실> 이야기 속의 문장들과 캐릭터를 차용하였습니다. 작가님의 "아무리 아프고 외로워도 그때 그곳 옥탑 화실로 한 시간 만이라도 돌아가 보고 싶다"라는 댓글 응답에 상상의 날개를 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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