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이제 아이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배란기 테스트기 사서 시작해보자” 결혼 2년차가 되자 남편은 짐짓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딩크는 아니었지만 딱히 아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남편이 하자고 하니 해야했던, 자녀계획은 내가 해내야 할 숙제 중 하나였다.
배란기 테스트기의 존재를 그때 처음 알았다. ‘도대체 남편은 어떻게 이걸 알고 있는 거지!’ 꼼꼼한 성격에 이미 온갖 검색을 했겠구나 싶었다. 감탄은 잠시, 배란기테스트기는 나를 짐승으로 만드는 족쇄가 됐다. 드라마를 보면 임신을 원하는 여자가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알지? 오늘 그날이야. 빨리 들어와” 라고 재촉하는 장면이 있다. 우리집은 남편이 배란기 3~4일 전후가 중요한 시기라며 관계를 강조했다. 임신에 동의한 상태에서 거부할 수도 없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성을 띤 관계는 마음을 피로하게 만들었다. 남편입장에서는 간절히 원하는 것이기에 마음은 이해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이 성스러운 임신의 실체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빨리 임신을 해.버.리.고 숙제를 끝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임산부가 됐지만 내 일상은 변함이 없었다. 12주이내 임신 초기에는 단축근무를 신청할 수 있었지만 안정기 이후에 회사에 보고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사실 말하기도 쉽지 않았던 것이 그때는 일년 중 가장 바쁜 연말이었다. 당시 기획부서 근무 중이라 다음해 운영방안 수립 및 보고서 작성, 구성원 인사고과 작업준비로 야근이 반드시 필요한 때였다.또 예산소진을 위해 예정에 없이 마련되는 저녁 모임은왜 그리 많은지.. 나는 임신을 너무 얕보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피를 보았을 때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영화 같은 순간은 왜이리 천천히 흘러가는 걸까. 화장실을 나와서 자리로 돌아가는 순간에 사람들이 불분명한 형체를 하고는 느릿느릿 지나갔다.
점심시간에 병원에 다녀온다고 하고 산부인과에 갔다. “계류유산입니다” 공장에서 빵 봉지에 상표를 찍어내듯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의사를 보니 “네~ 다음 환자”를 부를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 제가 요새 야근이 많았는데 무리를.” 문장을 끝내지도 못했는데 잔뜩 부풀어있던 풍선이 빵 하고 터지듯 갑자기 눈물이터졌다. 말을 이을 수 없을 정도로 오열하는 수준이었다.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너무나 복잡한 감정이었다. ‘그래. 나 너무 무리했어. 임신을 했는데도..’ 당연한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인정하는 순간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내가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눈을 문지르는 손 위로 수많은 눈물방울이 흘렀다. 의사는 “산모들이 대부분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전혀 아니예요. 착상부터가 불안정하게 됐기 때문에 산모의 탓이 아닙니다. 다시 준비하시면 되는 거예요” 1더하기 1의 답은 2인 것처럼 당연하단 듯 말하는 의사의 기계적인 대응이 차라리 위로가 됐다.
병원을 어떻게 나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작디작은 생명체가 내 몸을 빠져나갔다고 급하게 허기를 느꼈다. 근처 국밥집이 있어서 들어갔다. 멍하니 앉아있다가 점심시간이 끝나가 부랴부랴 휴대폰을 들었다. 짐을맡겨놓은 사람처럼 다짜고짜 반차를 쓰겠다고 통보했다. 죄송하다거나 반차를 사용하는 사유조차 말하지 않은 것은 회사에 대한 반항이었다. 주문한 국밥은 다 먹었는지 반만 먹었는지 안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짐을 챙기러 회사로 가서 차마 들어가지는 못하고 머뭇거렸다. 나의 임신과 이제는 유산한 사실을 모르는 곳에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가방을 들고 나올 자신이 없었다. 동료에게 전화해서 급하게 반차를 써야 하는데짐을 챙겨줄 수 있는지 부탁했다. 동료는 걱정하면서 혹시 임신했냐고 물었다. 저녁 모임때 술을 먹지 않는 모습을 보고 짐작했다고 했다. 예상못한 반응에 2차 눈물이 터졌다. 통화 중이었기 때문에 대답을 해야 하는데 고개만 끄덕였다.
내게 벌어진 일이 맞는지, 꿈인 건지, 다른 사람의 현실인 건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몽롱했다. 임신을 빨리 해버려야지 하고 귀찮음이 섞였던 오만한 마음과 임신을 얕보고 소중히 여기지 않은 쓰레기 같은 나를 그 몽롱함 속에 묻어놓고 도망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