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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모국경 Dec 23. 2022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기록했다.

시골을 여행하다 화장실이 급할 때면 다른 곳이 아닌, 꼭 파출소를 찾게 된다. 경찰관이라 파출소 출입이 마음 편한 만만 함일 수 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화장실 한 번 사용하자는데 인심 사납게 거부당해 낭패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날도 급했고 도로가 인접한 최단거리 파출소로 내비게이션은 곧장 안내해 주었다. 출입문을 조심스레 밀며 “저 실례합니다...” 하고 들어서려는 순간 ‘청렴의 문문문(門問聞)’이라  길게 써 붙여진 총천연색의 시골스런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볼 일을 보고서야 그 문구에 호기심이 일어 소내근무자(경찰관)에게 물었더니 내가 들어 선 문이 ‘청렴의 문’이라 했다. 물 한 잔 내어주는 컵에도  ‘청렴의 門問聞’과 함께, 풀이인 듯「문(門)에 들어서면서, 스스로에게 물어(問), 양심의 소리를 듣는다(聞) 라는 글귀가  박혀있었다.

그걸 보면서 청렴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경찰의 노력으로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응원의 갈채나 보내면 좋으련만, 워낙 ‘청렴’이라는 말이 실천에 앞서 구호로서만 도처에 범람하는지라, 그 범람이 넘쳐 이 시골파출소 문 앞까지 와닿았구나. 하는 배배 꼬인 생각이 먼저 들었고, 결국 난 대놓고 한 마디 하고야 말았다.


  “요즘도 누가 뇌물을 주나요? 곳곳에 청렴이게. 게다가 이런 시골파출소엔 시퍼런 돈다발은 고사하고 드링크 한 병 사들고 오는 사람도 없을 것 같네요.” 

  “하하하, 시퍼런 돈다발은 안 들어와도 울긋불긋 생기는 가득합니다.”

나의 비꼼 섞인 말에 그는 사람 좋은 굵직한 웃음과 뜻 모를 생기 넘치는 말로 대받아 쳤다. 그러고는 자신의 말에 추가 입증이나 하려는 듯 부책들 사이 대장 하나를 쓱 빼내 보였다.


[우리 파출소는 받았습니다] (청렴기부대장)

참으로 꾸밈도 구린내도 없는, 정직하다 못해 순박한 문서대장이었다. 

뒷 광고는 공분으로 사회를 들썩이게 하지만 앞 광고는 사회로부터 당당히 응원받듯, 검은 대장 위에 붙여진 새 하얀 문자는 여봐란듯이 당당했다. 명부에는 고로쇠, 하지감자, 표고버섯, 사과, 대봉 등등 그야말로 생기 넘치는 싱싱한 것들만 골라 단정히 진열해 놓은 슈퍼마켓 앞 자판 같았다.

언제, 무엇을, 얼마나, 받았는지 의문이 없도록 말쑥이 기록되어 있는 것도 있었고, 그저 날짜만 두리뭉실 뭉개어 기록된 뇌물(?)들도 있었다. 

이야기인즉슨, 아직도 시골에는 사람 사는 정(情)이 군데군데 남아 일구고, 가꾸고, 수확한 농산물을 심심치 않게 가져온다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 거절도 하고 받을 수 없음을 설득도 해 보지만 매몰차게 거절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고 또 아예 인기척 없이 파출소 앞에 몰래 놓인 물품도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파출소는 거쳐가는 중간지점일 뿐 그 정(情)들의 종점은 아니라 했다. 대장에 기록한 후에는 다시 원 주인인 주민에게 되돌아갈 수 있도록 경로당이나 마을회관, 지역아동쉼터로 전달한다 하였다. 하루는 관절에 좋다는 고로쇠 물을 오지마을 어르신들에게 나눠 드리던 중 ‘100원 택시*’ 기사님 눈에 현장이 목격되었고, 이러한 경찰 활동은 목격자인 기사님의 기동력 있는 입소문을 통해 주민들에게 활활 번져갔다는 ~ 훈훈한 뒷이야기까지 들려주었다. 

* 100원 택시 : 교통이 불편한 오지마을 주민들을 위해 100원만 주면 택시를 타고 다닐 수 있는 교통수단

이렇듯 그들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구태여 왼손이 모르게 하지 않았다. 되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기록하고 나아가 누구에게나 당당히 보여주고 들춰내었다. 그들에게 청렴은 음지에서 받은 돈다발을 애써 양지에서 티 내며 돌려주는 특별한(?) 뉴스가 아닌, 단지 주민과 함께하는 평범한 '일상'이었다.

 

경찰의 청렴을 경험하지 못한 누군가는 아직도 ‘경찰문화에는 비리의 그림자가 있다’는 그 옛날의 쑥덕공론만을 믿은 채 112 누르기를 망설이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경찰을 의지하며 살아갈 권리!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마땅히 누릴 수 있게,  우리는 국민에게 진실한 경찰의 모습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국민의 경험만이 경찰의 청렴성을 입증할 유일한 증거임을. 

'청렴'을 부르짖는 옥타브 높인 경찰 스스로의 자백이 아니라 오로지 국민에게 주어진 국민의 경험적 소리만이 객관적 증거임을.  되새기며...



파출소에 근무할 당시, 우리 파출소에서 실제 있었던 일을 제3자가 되어 써 본 글이었다.

이름도 촌스러운 '토지파출소'  

틈만 나면 파출소로 놀러 오시던 토지할머니(할머니 성함도 알지 못한 채 그냥 토지 할머니라 줄곧 불렀다)의 반가운 전화에 옛 생각이 나 지난 글을 들춰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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