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하는 숨은 공로에, 혼자 하는 독백으로

by 국모국경

쓰지 않을 때의 편안함보다

쓸 때의 어리석음을 더 좋아한다.



쓰고 나면 벌거벗은 듯

알몸이 되어 괜스레 부끄럽기도 하고

또 지극히 경험적이고 편파적인 생각들에

극심한 오류가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써 내보이는 일은

'나 못난이예요.' 하고 스스로 기록으로 남겨 증명하는 어리석음 같다.

하지만 그 어리석음을 감내하고서라도

쓰고 싶은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자랑이 하고 싶을 때다.




시곗바늘이 7시를 건들쯤 나는 사무실 문을 열었다.

환했다.

여름 아침의 이른 햇살인 줄 알았는데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었다.

바닥이었다. 하얀색 타일 바닥이 목욕탕엘 다녀온 것처럼 혈색이 돌아 환해져 있었다.

박하 향기도 났다. 어느 한쪽 구석에서 일정하게 뿜어져 나오는 퍼퓸이 아니라

사무실 공간 전체를 감싸고도는 향이었다.

순간 '향기도 뿌린 사람의 성향을 닮을까?' 하는 화학적으로 말도 안 되는 생각도 했다.


함께 근무하는 동료가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에 다녀갔단 증거다.

우렁각시처럼 아무도 없는 새벽 시간 사무실에 나타나 깔끔히 청소하고

아침 회의에 필요한 보고서들은 말끔히 정리하여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8시에 있을 회의와 8시 40분에 있을 회의, 두 회의를 위해 준비해 놓은 것이다.


이렇게 일하면서도 초과 찍기도 하지 않는다.

한 번은 그 이유를 물었더니 다시 집으로 가야 하니 양심상 아니란다.

이제 갓 어린이집에 들어간 아들을 위해 아침에 유연근무를 쓰는 동료는

아침 일찍 출근하지 못함을 미안해했다. 그 아침의 대안으로 새벽을 찾은 것이다.

덕분에 나는 아침을 허둥되지 않고 카푸치노 한 잔까지 마실 수 있는 여유를 누릴 수 있다.

덕분에 A는 아이를 챙겨 학교 보내고 천천히 출근할 수 있다.

덕분에 B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아침 시간을 할애해 공부할 수 있다.

덕분에 C는, 덕분에 D는, 덕분에 E는...

그렇게 우리 모두는 우리 사무실을 근무하기 좋은 곳으로 여긴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

공로는 꼭꼭 숨겨야 미덕이 된다고 배웠다.

하지만 숨었는데, 꼭꼭 숨어서 아무도 알 수가 없는데

어떻게 '숨은 공로'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나는 그 가르침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생각했고 신상필벌과는 맞지 않은 억울한 소리라 생각했다.

나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기록하기를 좋아한다.

적어도 당사자가 쑥스러워 왼손 사용하기를 거부한다면

기꺼이 내 손이 그 동료의 왼손이 되어주고 싶다.



처서가 지났지만 여전히 무덥다.

그러나 한 여름의 태양은 절기에 맞게 한 풀 꺾였는지

아침이 점점 뒤로 밀리고 있다.

동료는 조만간 새벽 출근이 아니라 어둠 속 출근을 할 것 같다.

그때가 되면 진짜로 동료의 공로가 어둠 속에 꼭꼭 숨겨져 버릴 것 같아

동료의 '혼자서 하는 숨은 공로에, 혼자서 하는 독백으로' 라도 '찾았다' 외쳐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매뉴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