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국모국경 Feb 08. 2023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산다는 건 행운일까?

비암사를 다녀왔다.


비암사는 세종시에 있는 조그마한 사찰이다. 

산속에 포근히 잠겨있는 듯한 비암사는 해질녘이면 한층 더 고즈넉해진다. 국보가 2점이나 발견된 곳이지만 외부로 뽐내지 않은 사찰이라 그런지 주자창에 차 한 대 없이 조용하다. 

사찰 초입에는 '아니 오신 듯 다녀 가소서'라는 문구가 새겨진 현판과 함께 수령이 810년에 이르는 느티나무가 있다.  아니 오신 듯 다녀가라는 글귀가 한 발 한 발 얌전히 법당으로 향하게 한다.


법당 앞에는 한 켤레의 신발만이 놓여 있다.

주지스님의 염불 시간이다. 타종 시간에는 조금 늦었지만 다행히 주지스님의 염불 외는 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주지스님 신발 뒤에 나의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고 불당에 들어서니 언제나처럼 온화한 표정의 불상이 맨 먼저 눈에 들어온다. 부처님에게 가볍게 눈 마주치며 합장을 하고 나서 방석을 가져다 앉는다.


내가 이곳 비암사를 특별히 좋아하게 된 것은 불상 때문이었다. 부처님의 얼굴에는 사찰 특유의 풍겨오는 엄숙함도 무서움도 없다. 단지 어른의 온화한 얼굴빛으로 "왔느냐"하고 맞이해 주는 것만 같다.

응석도 받아주고 어떤 말도 다 들어줄 것 같은 모습 앞에서 난 진중한 기도의 자세가 아니라 떼쓰는 아이가 되어 온갖 이야기들을 쏟아 내곤 한다. 심지어 아무도 없을 땐 소리까지 내어 말한다.


"안녕하세요 부처님 오랜만이죠. 자주 온다고 약속하고선 약속 지키지 못해서 죄송해요. 오늘은 유연근무를 사용해서 1시간 빨리 퇴근하고 왔어요. 요즘은 인사 시기라 뒤숭숭한 분위기예요. 변화라는 건 그런 건가 봐요. 사람 마음을 뒤숭숭 쑤셔 놓기도 하고 설레게도 하는.  저두 올핸 개인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아니 변화를 원해요. 원하는 변화가 많아서 또 부처님을 찾아온 것인지도 몰라요. 좀 더 솔직히 표현하면 변화는 소원이고 제 소원 들어달라고 왔어요" 이런 식으로 나는 아이들의 전유물 같은 수준의 수다를 부처님 앞에서 떤다. 

그리고 나의 소원을 순서대로 말하기 시작한다.

소원의 중요도나 순서를 미리 정하거나 생각해서 온 것은 아니다. 이곳에 오면 저절로 나오고 그래서 내 마음도 저절로 정리되면서 알아차리게 된다. 지금 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가장 절실히 원하는 것인지... 깨닫게 한다.


아들들을 위한 바람이었다. 특히나 큰 아들은 올해 고3이다. 아들이 원하는 곳에 닿기를 바란다. 

난 아들들을 '도야'라 부른다. 자신의 길을 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부르는 애칭이다. 

고3인 아들이 올 한 해를 보내는 시간은 아들이 가고자 하는 길에서 마주하는 중요한 시점의 시간이다.  힘든 지금의 시간을 잘 견디어 주길 바라고 그리하여 원하는 결과까지 닿아주길 바라는 기도를 올린다. 하지만 아들을 위해서 부처님에게 부탁 기도만 하기엔 너무 염치없고 또 엄마로서도 너무 하는 게 없는 것 같아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도 찾아본다.

그런데 결론은 아무것도 없다. 공부를 대신해 줄 수도 없고, 공부하다 힘들다고 징징대는 아들을 더는 업어 달래 줄 수도 없다. 기도해 주는 게 전부다. 할 수 있는 게 기도뿐이라면 비록 부처님 앞이 아니어도 매일매일 해 주고 싶었다.  

그리하여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기도도 하고 아들이 원하는 곳에 닿아 있는 모습을 상상도 한다. 하지만 이내 아들을 위한 온전한 기도, 온전한 상상이 되지 못하고 방해를 받는다. 시작은 의식적으로 아들을 생각하고 아들을 위한 기도를 하지만 나도 모르는 순간 내 머릿속은 기도 대신 나의 일에 대한 고민들로 전환되어 있다. 기도할 때뿐 아니라 일상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것들에서 나도 인지하지 못한 생각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경찰 일과의 연결고리를 만든다. 사소하게는 손에 든 컵만 봐도 그 잔에 1366(여성 긴급신고 전화번호)의 숫자를 새겨 넣고 싶고, 밥 먹으러 간 식당에선 수저가 놓인 종이 테이블만 봐도 식당 광고 문구 대신 그 종이 위에 사회적 약자를 위한 안전지도(폭력 피해 여성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를 그려 넣고 싶어 진다. 내가 내 일을 좋아한다고 부끄럽 없이 말할 수 있는 것도 이런 모습, 이런 현상 때문이다.  좋아해서 빠지지 않고서야 시도 때도 없이 생각을 만들어 낼 순 없기 때문에.


그런데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산다는 게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 행운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삶의 균형을 지키지 못하고 사는 삶은 아닌지 의심하게 되고, 소중한 걸 더 소중히 여기지 못하고 놓치거나 지나쳐 버리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된다. 그래서 좋은 엄마는 고사하고 영원히 아들들에겐 미안한 엄마밖엔 되지 못하고, 비록 열심히 살았다고는 하나 어리석게만 보낸 젊은 날의 내 삶을 원초적으로 후회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도 든다. 



하지만... 난, 자신의 길을 가길 바라는 나의 도야들에게 이 말만큼은 거짓 없이 해 줄 수 있는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너희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그러면 살다가 마주하는 힘든 순간이 와도 그걸 이겨 낼 수 있는 힘이 생기고 힘듦 속에서도 의미와 희망이 있어 삶이 행복하다고. 좋아하는 일을 가졌다는 건 엄마가 살아보니 그건 행운인 게 맞다고. 그 증거가 그 증인이 엄마라고. 엄마는 경찰인 엄마 자신을 좋아했고 그래서 경찰로서 산 지난 20년이 행복했고 감사했다고. 그리고 앞으로 남은 시간 속에도 엄마는 행복할 것 같다고 '

이렇게 나의 도야들에게 해 줄 말을 정리하면서 나 자신에게 해 줄 말의 결론도 찾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있는 나는 운 좋은~ 행복한 사람이고, 행복한 나의 삶을 보여주는 것 또한 엄마로서 어쩌면 아들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살아있는 기도가 아니겠냐'라고 자위하며...



19년 1월 ~ 22년 1월,  3년 간 야간근무를 마친 새벽이면

혼자 옥상에 올라 암송하던 두 편의 시가 있었다.  그중 한 편을 적어본다.


내가 부모로서 해 줄 것은 단 세 가지    - 박 노 해 -


내가 부모로서 해 줄 것은 단 세 가지였다.

첫째는 내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 동무들과 

마음껏 뛰놀고 맘껏 잠자고 맘껏 해보며

그 속에서 고유한 자기 개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


둘째는 '안 되는 건 안 된다'를 새겨주는 일이다.

살생을 해서는 안 되고

약자를 괴롭혀서는 안 되고

물자를 낭비해서는 안 된고

거짓에 침묵동조해서는 안 된다.

안 되는 건 안된다는 것을 뼛속 깊이 새겨주는 일이다.


셋째는 평생 가는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자기 앞가림을 자기 스스로 해나가는 습관과

채식 위주로 뭐든 잘 먹고 많이 걷는 몸 생활과

늘 정돈된 몸가짐으로 예의를 지키는 습관과 

아름다움을 가려보고 감동할 줄 아는 능력과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홀로 고요히 머무는 습관과

우애와 환대로 많이 웃는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그러나 내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할 유일한 것은

내가 먼저 잘 사는 것,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이었다.


유일한 자신의 삶조차

자기답게 살아가지 못한 자가

미래에서 온 아이의 삶을 함부로 손대려 하는 건 

결코 해서는 안 될 월권행위이기에

나는 아아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자 안달하기보다


먼저 한 사람의 좋은 벗이 되고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가 되고

행여 내가 후진 존재가 되지 않도록 아이에게 끊임없이 배워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저 내 아이를 '믿음의 침묵'으로 지켜보면서

이 지구별 위를 잠시 동행하는 것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누구나' 할 수는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